양현
공인노무사
(철도노조 법규국장)

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나2045001 판결

1. 노동조합의 파업과 언론


2001년 여름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저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개혁법안 쟁취와 임단협 승리’를 내걸고 연대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에 대해 당시 언론들은 ‘이 가뭄에 연대파업 비상’, ‘엎친 가뭄에 덮치는 파업’, ‘가뭄비상에 파업비상까지’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15년 전 언론의 이와 같은 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인식은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9년 11월께 철도노조는 철도공사의 단체협약 개악 저지 등을 목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5일째 되는 날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해 한 고등학생이 서울대 면접에 늦었고 이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할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다. 이 기사로 인해 철도노조 홈페이지는 항의글로 도배됐다. 철도노조 파업의 목적이나 쟁점은 희석됐다. 그러나 이 기사는 지난한 소송을 통해서 기사가 나온 지 2년 뒤에야 비로소 삭제되고 <중앙일보>는 ‘반론보도문’을 내보냈다.

한편 철도노조는 2013년 12월9일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고 이 파업은 유례없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진행됐다. 2013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주요 언론사들은 여느 파업과 마찬가지로 ‘노동귀족’ 또는 ‘철밥통들’의 집단이기주의로 간주하고 파업으로 인한 시민불편과 업계 피해만을 강조하며 부정적인 여론조성에 앞장섰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이 파업에 부정적인 여론조성을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보도한 언론과 대한민국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를 인용하고 철도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2. 사건개요와 대상판결요지

피고인 조선방송·동아일보·동아닷컴은 국토해양부의 보도자료를 근거로 2013년 12월26일‘하루 승객 15명인 역에 역무원 17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원도 태백선에 있는 쌍용역의 운송수입은 1천400만원에 그친 반면 인건비는 11억3천900만원으로 역 수입의 81.3배에 이르며 이러한 비효율은 강성노조가 경영효율화에 반대하기 때문이다’는 취지의 방송과 기사를 내보냈고, 국토해양부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위 동아일보 기사를 링크해 게시했다. 철도노조는 피고들이 허위사실을 보도해 철도노조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그에 대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법원은 이 사건 기사들에서 등장하는 역의 비효율적 운영 원인이 강성노조인 철도노조에 있다는 취지의 비판을 하고 있어 원고인 철도노조가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되며, 이 사건 기사들 중 철도운송수입에 비해 인건비가 81.3배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사실은 허위사실에 해당하고 이 사건 기사들로 인해 철도노조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되는 피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들은 정정보도 의무가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허위사실을 보도해 철도노조의 명예가 훼손됐고 비록 이 사건 기사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아 불법행위가 성립하므로 피고들은 철도노조에게 각자 3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동 판결은 피고들이 상고를 포기해 확정됐다).

3. 대상판결의 의의와 한계

법원은 ‘신문 등 언론매체의 어떤 기사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지 여부는 일반 독자가 기사를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그 기사의 전체적인 취지와의 연관하에서 기사의 객관적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의 연결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기사가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다가 당해 기사의 배경이 된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당해 표현이 가지는 의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2.1.22. 선고, 2000다37524 판결 등). ‘표면적’으로 이 사건 기사들은 철도공사의 방만한 경영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 ‘강성노조가 철밥통 챙기기에 앞장선 결과’ 등을 표현해 ‘일반독자’입장에서는 방만경영의 직접적인 원인이 (강성)노동조합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더욱이 이 사건 기사들이 보도된 시점이 철도노조의 파업 기간이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이 사건 기사들은 허위사실을 보도해 철도노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본 것은 타당하다.

이에 조선방송 등 피고들은 가장 공신력이 높은 취재원 중 하나인 ‘국가기관’이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보도한 것으로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사유인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항변했다. 대상판결에서는 보도자료에 작성명의가 없어 공식 보도자료로 보기 어렵고, 다른 역에 비해 수입대비 인건비 비율이 81.3배라는 것이 통계적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이 있는데도 객관적인 자료나 철도공사 등에 확인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점에 비춰 피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는 ‘그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적절하고 충분한 조사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 등’에 따라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존 대법원 판례법리(2000다37524 판결)를 충실히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사건 기사들에 대해 ‘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일부 역에 이용하는 승객과 수입이 적은데도 지나치게 많은 역무원이 배치돼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으로서 공익성은 인정된다’고 판단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역무원의 수나 배치는 당해 역의 주요 기능 등을 고려해 정하게 되는 것이지 이용하는 승객의 수와 수입이 그것들을 정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건 기사들은 문제가 된 역의 화물운송업무가 주된 업무라는 것을 고의적으로 누락해 역 수입에 비해 인건비가 81.3배에 이른다는 기사를 내보냈는바, 동 기사의 출처가 국토해양부의 공식적인 보도자료도 아니었고, 철도노조 파업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기사들의 보도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파업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파업을 종료시키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이는 기본적으로 파업은 범죄행위라는 인식에 의한 것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

또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각자 300만원으로 정했는데 이는 피고별로 75만원에 불과해 당시 이 사건 기사로 인해 피해를 본 철도노조와 해당 역 조합원들이 겪었던 모멸감에 비하면 너무 낮은 금액으로서 동 금액만으로 향후 이와 같은 불법행위를 억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언론사들이 언론보도에 더욱 더 신중을 기할 수 있도록 이와 같은 허위기사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더 높이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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