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동자
최병승

꽃.

민주노조의 꽃은 해고자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꽃은 꺾였고, 노동조합에 애물단지가 됐다. 어쩌면 꽃이 꺾이는 그 순간 민주노조는 수렁으로 빠졌는지 모른다.

전해투.

전국구속수배해고노동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의 약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가리지 않고 해고자라면 누구나 가입하고 투쟁했던 자랑스러운 깃발이다. 울산에는 아직도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가 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현대차 촉탁계약직 노동자 투쟁을 함께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투쟁하는 원칙. 그것이 전해투 정신이다.

전해투는 상급단체와 지역본부, 심지어 단위노조까지 껄끄러워해도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했다. 두 차례 한국노총 점거를 통해 노동계에 경종을 울렸다. 전국을 순회하며 해고자 복직을 요구했다. 해고자가 노동운동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그 시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의 약칭으로 쓰이고 있지만 정신과 태도만은 동일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길 위의 투사, 어용과 타협하지 않는 민주노조의 파수꾼.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국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기동성이 필요한데 그 엔진인 방송차가 위기 상태라고 한다. 지금도 굴러가고 있지만 언제 퍼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나에게도 있다. 전해투 방송차를 많이 얻어 탔고, 많이 빌렸기 때문이다. 전해투 방송차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것이다.

방송차뿐만이 아니다. 사무실도, 비품도 투쟁하는 노동자와 모두 공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작업장소나 회의장소가 없으면 아무 말 없이 민주노총 13층 전해투 사무실을 이용한다. 덤으로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그렇게 전해투는 그 자리를 지키며 투쟁하는 노동자를 연결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희생으로 유지된다. 그 선봉에 선 노동자가 해고자다. 오랜 시간 투쟁하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공장을 떠나야 했던 아픔도 있고, 장기간 해고생활로 병을 얻어 돌아가신 분도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고 아직도 투쟁하는 동지도 있다. 각각의 이유 때문에 가장 앞장서 투쟁한 동지를 우리는 잊고 산다.

맞다. 그 모든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해 줄 수 없다면, 그들을 만나 조직하고, 얘기 듣고, 함께 투쟁하겠다는 것을 자임한 전해투 동지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방송차가 필요하면 방송차를, 복사기가 필요하면 복사기를, 다른 무엇이 필요하면 그 무엇을…. 해고자로 살아온 나부터 전해투를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이번 방송차 기금 모금으로 많은 선배들의 기억에서 ‘전해투’가 살아난다면 민주노조운동은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꺾인 꽃이 다시 생명을 찾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희망을 기약하며 전해투의 새로운 엔진을 우리가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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