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당에서 사회민주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반대론자들이 꽤 있었는데 이유는 매우 다양했다. 상당히 많은 수가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사회주의 원칙 고수, 혹은 사회주의 가치 계승은 진보운동 진영 일각에서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통용되기도 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사회주의는 반드시 똑같다고 볼 수 없다. 사회주의 원칙이나 가치 계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제각기 다르거나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적인 사고의 차이를 일일이 고려하다 보면 아무런 논의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를 잠시 묻어 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은 역사적 검증이 가능한 20세기 현실사회주의다.

그동안 자본주의 극복과 관련해서는 크게 세 가지 과제가 제기돼 왔다. 첫째로 소수 개인의 자본 지배와 자본의 인간 지배를 극복하는 것. 둘째로 자본의 무제한 이윤 추구가 야기한 환경 파괴를 극복하는 것. 셋째로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한 몰개성적 개인 소외를 극복하는 것 등이다. 과연 20세기 현실사회주의는 이러한 세 가지 과제를 해결했는가.

먼저 소수 개인의 자본 지배와 자본의 인간 지배 극복에 대해서 살펴보자.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과학적 이론이다. 중세 봉건 시대에는 핵심 생산수단인 토지를 소유한 지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가 세상을 지배했다. 생산관계는 바로 이러한 생산수단 소유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런 만큼 생산관계를 변혁한다는 것은 곧 생산수단 소유관계를 바꾸는 것을 필수 전제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사회주의는 매우 급진적 태도를 보였다.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에서는 자본에 대한 사적소유가 폐지되고 사회적(집단적) 소유가 일반화됨에 따라 자본축적 자체가 완전 배제됐다. 대부분의 기업은 국가기구의 일부가 돼 국가 계획관리 아래 움직였다. 그러나 이 같은 소련 식 국가사회주의 시스템은 비효율성이 심화되고 생산성이 정체되면서 끝내 붕괴되고 말았다.

중국은 생산성 정체를 개혁·개방을 바탕으로 자본축적과의 재결합을 통해 극복하고자 시도했다. 그 결과 중국 경제는 장기간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자본의 인간 지배를 부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사회주의 본연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실종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중국 모델 역시 자본주의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과 달리 전통적 사회주의 모델을 고수해 온 북한과 쿠바 등이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나 경제적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면서 아직은 그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형편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고 야심찬 실험을 착수했으나 후임 정권에 이르러 정치·경제를 비롯한 모든 방면에서 상당한 혼란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20세기 현실사회주의가 자본의 인간 지배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환경 파괴 극복은 어떠한가. 이 과제와 관련해서도 20세기 사회주의는 우월성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과거 동서독 시절 사회주의 동독이 서독에 비해 환경 파괴가 더 심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한때 환경보전을 잘해 온 것으로 평가받았던 북한도 90년대 중반 이후 심각한 에너지난에 직면하면서 연료용 땔감 조달 과정에서 대부분의 야산이 민둥산으로 돌변하는 등 심각한 환경 파괴를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발생했던 몰개성적 개인의 소외 극복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대표되는 좌파 운동의 원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사회의 실체로 파악했다. 그런 점에서 근대 시민혁명이 창출한 자유주의 가치를 계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각자의 발전이 전체 발전의 전제가 되는 사회를 미래 대안으로 제시하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체의 연대와 협력이 국가의 강제를 대신하는 것을 사회 발전의 합법칙적 방향으로 제시했던 것은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0세기 현실사회주의에서는 집단주의 가치가 압도하면서 개인의 개성은 상당 정도 억제됐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비판했던 ‘획일화’가 어느 정도는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극복 과제의 하나인 개인의 소외 극복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역사는 한계를 딛고 전진한다. 20세기 현실사회주의 계승과 지양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때 역사는 전진할까.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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