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처참한 날이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수장된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제사조차 지내지 못했다.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예정된 세월호 참사 1주기 공식 추도식은 취소됐다. 아이들의 넋을 달래려는 유가족의 간절한 염원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유가족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 선체 인양 약속,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를 요구했지만 정부당국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하늘나라에서 이를 지켜 본 아이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오전 내내 비마저 추적추적 내렸다. 제삿밥도 먹이지 못한 부모들은 오열했고, 비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시민들은 말을 잃었다. 먼저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의 인심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나워졌을까. 대통령마저 상주들과 함께 하지 않으니 추모식조차 치르지 못한 나라가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아이들을 위해 진심이 담긴 제삿밥을 차려 줄 의지를 밝히지 않아서다. 1년 전을 상기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장을 엄숙히 치러야 할 맏상주 역할을 자임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족도 없는 전라도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마치 남의 나라 대통령이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것처럼 40분 동안 팽목항 주변을 둘러보고 떠났다. 추도식은 없고, 선언만 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선체를 인양 하겠다”는 원론만 되풀이했다. 박 대통령조차 304명의 억울한 희생을 가벼이 하고, 국민과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셈이다. 대통령이 이러니 정부 관료들도 이젠 세월호 참사를 잊으려하는 모양이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국민안전처는 이날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국민안전의 날’ 행사를 주최했는데 저급한 ‘관급행사’였다. 행사에는 국민안전처에서 초대한 세월호 유가족 6명이 참여했음에도 국민안전처의 정책과 활약에 대한 소개에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등장할 때는 동원된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팡파레까지 터져 나왔다. 정작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시간과 별도의 공간은 없었다. 이것이 죽어 가는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속죄와 성찰의 추도식 풍경이라 할 수 있는가. 죽어간 아이들 앞에서 다시는 4월16일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어른들의 모습인가.

우리는 세월호 참사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고 다짐했다. 돈보다는 생명, 이윤보다는 안전이 우선시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반성하는 어른으로서 모범을 보여할 의무가 있다. 내 아들과 딸이라 여기고 가족의 심정에서 유가족과 함께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월호 참사 후 7개월 만에 가까스로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좌초시켜선 안 된다. 예산을 축소하고, 인력을 줄이는 형태로 특별조사위 활동을 가로막지 말라는 것이다. 구조의 책임이 있는 해양수산부와 해경이 특별조사위원회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진상규명을 방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조사받아야 할 당사자가 조사 책임자가 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대통령령을 폐기하지 않은 것은 유가족과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영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는 피어나는 꽃에 홀리지도, 새싹에도 감동하지 못한다. 그저 4월은 잔인한 달이 되어 버렸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는 없었고, 기대하려는 마음마저 꺾여 버렸다. 이젠 우리 스스로 생명을 틔우는 새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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