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하
공인노무사
(전 국회 보좌관)

노동시장 구조개선 노사정 협상의 실패는 잘못된 프레임 설정 때문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지난 졸고(매일노동뉴스 2015년 1월5일자)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조악한 프레임이 또 문제가 될 것 같다. 일명 ‘해고요건 가이드라인’ 얘기다.

정부는 과거에도 노사정 대화나 국회 법률 개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돌파구로 항상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같은 회피수단을 활용해 혼선을 야기한 전력이 있다. 정부가 가진 권한이니 행정입법권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했다 하여 그 자체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향후 입법 과정에서 발생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단순한 카드인지 아니면 그 위헌성이나 위법성 시비로 인한 입법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그것을 비껴가기 위해 선택한 카드인지에 따라 정부의 ‘책임성’에 대한 문제는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협상전술 중 하나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은 왜 위헌적일까. 첫째, 사용자의 해고의 자유로부터 보호돼야 할 근로자의 권리가 헌법 제32조(근로의 권리)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기본권인지 여부다. 헌법재판소(헌재 2002. 11. 28 2001헌바50)는 "부당한 해고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 의무를 도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해당 권리는 기본권이다.

둘째, 가이드라인이 헌법 제37조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률유보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다. 헌법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에 근거해 법률이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일탈했는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과잉금지의 원칙’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한번 살펴보자.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상위법령의 위임이 없다는 점에서 가이드라인은 법규명령이 아니라 정부 내부의 조직과 활동을 규율(해고사건이 들어왔을 때 일선 행정관서 처리 기준·절차)을 하는 데 불과한 행정규칙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정규칙에 불과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부는 근로의 권리, 그중에서도 중요한 근로조건인 해고에 대해 규율하고 있으므로 행정규칙의 헌법적 한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당초 입법적 개선을 계획하다 노사정 대화가 결렬된 뒤 다시 가이드라인이라는 우회적 경로를 선택했다. 기본권 침해의 피해를 최소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입법화’였음을 알리는 방증이다. 헌법이 요구하는 방법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을 벗어나고 있으며, 해고 기준 제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사회적 유용성보다 침해되는 근로자들의 이익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에서 법익균형성 또한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즉 정부가 현행 법률 개정 없이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행정입법을 할 경우 구체적인 입법형식에 상관없이 법률유보의 원칙과 관련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입법전(立法戰)의 막이 올랐다. 이대로 위헌성 시비를 무시하고 간다면 입법 과정이 순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고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로 여야가 대치하고 있어 국회 전망이 아무리 흐리다 한들,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관련한 입법전은 벌어지게 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다 미디어법과 금산분리 완화법 강행 처리·4대강 사업과 세종시 논란 등으로 지금 못지않은 여야 대치상황이 벌어졌던 2009년에도 노동관계법은 개정됐다. 정부가 정말 통상해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정부 개정안을 만들어 입법전 무대에 올리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대의제를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방법이다.

현재의 만만치 않은 정치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 개혁은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동력이 약한 상태에서 혁명적 개혁을 꿈꾸는 것은 과욕이다. 그리고 이런 때에 과욕을 부린다면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에 묻고 싶다. 좀 더 멋지고 당당하게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해 볼 생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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