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얼마 전 SBS에서 방송된 <착한 의자>라는 프로그램에서 한미글로벌에 대해 알게 됐다. 그 회사의 대표자는 기업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를 '지속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망해 버리면 기업가는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노동자와 그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의 안정적인 삶이 파괴되니, 죄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과하지 않은 표현이다.

독특한 경영관과 언행일치하는 삶으로 한미글로벌은 언론에서 착한 기업, 좋은 기업으로 칭송받고 있고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기업인의 지속 가능성을 향한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양심의 문제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국가가 노동자 고용을 증진하고 적정임금을 책임질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우리의 법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 사업장이 회생을 위한 일시적인 기간에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민주노총 사업장만해도 흑자 상태에서 정리해고를 하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현재는 흑자지만 미래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해고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는 기업에서 해고회피노력도 없이 쫓겨난 이들이 차고 넘친다. 경영상 위기를 불러일으킨 경영진은 고통을 분담하지 않고, 귀책사유가 없는 노동자들만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책임을 떠안아 왔던 것이다.

이달 1일자로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하이디스테크놀로지 노동자 353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이디스는 두 번의 매각과 법정관리 등을 거치며 2천명에 달하던 노동자들을 377명으로 줄였으며 그중 93.6%의 노동자들을 한날한시에 해고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은 기업 도산을 피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 경쟁력 회복을 위한 작업형태 변경, 신기술 도입 등을 위해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인데 하이디스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광시야각기술(FFS) 특허료의 일부만 투자해도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 있고 향후 8년간 약 5천억원의 특허료 수입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흑자 경영에, 미래의 경영상 어려움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해고회피노력도 없이 하이디스는 무려 300명이 넘는 한 집안 가장의 밥줄을 끊어 버렸다.

지금 이천 하이디스 공장에서는 정리해고에 맞서 1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옥쇄파업을 진행 중이다. 회사가 성장하면 회사 성장에 기여한 노동자들은 더 쉽게,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청춘을 바치고 일한 공장에서 쫓겨났지만, 상실감과 희망퇴직의 유혹과 회유를 떨쳐 버리고 정리해고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한 하이디스 노동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요청한다. 회사 회유를 뿌리쳤기에 이 부당한 해고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희생자지만, 이들이 희생에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기에 우리 사회는 정리해고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철폐를 위해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어, 정리해고가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길, 노동자 투쟁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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