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이번주 대법원 1인 시위를 시작합니다. 16일로 예정됐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이 불투명한 관계로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그래서 14일로 예정됐던 탄원서 제출과 기자회견도 연기됐지만 1인 시위는 계속 진행합니다. 금속노동자 10만명의 탄원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번 만큼 많은 관심과 조직 바랍니다.”

어제 페이스북 게시글이었다. 요즘은 글만 올릴 뿐 게시글을 읽는 일이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대법원 앞 1인 시위 사진과 함께 올려진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읽고서야 모레로 예정됐던 대법원의 공개변론이 연기된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금속노조에서 10만명을 목표로 탄원서를 조직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진에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 신시연이 서 있었다. ‘15만 금속노조는 하나입니다. 금속노조 조합원만 차별하고 탄압하는 발레오자본을 법의 준엄함으로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었다.

경주의 발레오만도 사업장에서 2010년 파업투쟁으로 금속노조 지회 간부들이 구속되고 조합원 상당수가 업무에 복귀하면서 조직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이런 와중에 당시 지회 집행부에 대항해서 금속노조 지회에서 기업노조로 전환하는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있었다. 기업노조로의 조직형태변경 효력을 둘러싸고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고, 이 때문에 금속노조 신시연 조합원은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에 탄원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효력이 없다는 판단을 해 달라고 시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은 지난 10일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대법원이 ‘산별노조가 맞냐 안 맞냐’를 판단하려 하고 있다며 공개변론을 비판했다. 지부·지회 등 하부조직의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효력이 없다고 대법원에 판결해 달라고 시위하고, 그런 조직형태변경 사건에 관해 곧바로 상고를 기각해서 효력이 없다고 판결하지 않고서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열어서 판단하겠다고 하는 데 대해서 그 결과를 우려하며 기고하고 있다. 이들뿐이 아니다. 산별노조 간부와 활동가, 민변 노동위 등 법률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발레오만도에서 한 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효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별노조가 위험하다."

2. 내 몸인 듯 아픈 것이 있다. 쏟아부었던 시간만큼 그렇다. 그만큼 내 근육과 머리가 그것에 옮겨지는 것인가. 금속노조를 떠난 것이 2008년이니 7년,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아물 때가 됐다. 별일이다. 산별노조에서 조직형태변경이 새삼 문제가 되고 있다. 금속노조의 지부·지회 등 기업조직이 결의로 기업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것이 문제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에서 산별노조 전환을 논의할 당시였으니 2000년 전후였다. 법률원장으로서 나는 장차 금속노조·산별노조의 조직운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쟁점으로 이 문제를 찾아내서 검토했었다. 금속노조의 규약규정을 제정할 때도 이 문제를 고민했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특별히 노동조합에 대해 조직형태변경 제도를 두고 있다. 사단 등 민법상 사람의 단체에서는 두지 않고 있는 단체의 조직변경 제도다. 해산과 설립의 절차를 조직형태변경이라는 하나의 절차로 할 수 있도록 노조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특별히 노동조합에 한해 정한 제도로서 1997년 노조법을 새로 제정하면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수월하게 전환하게 하기 위해서 도입했던 것이다. 즉 노조법은 노동조합 총회의 의결사항으로 조직형태변경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재적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고 있다(제16조제1항·제2항). 이처럼 노동조합에 관해서 조직형태변경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니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닌 경우에는 조직형태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닌 그 하부조직인 지부·지회 등은 조직형태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당연히 이렇게 해석돼야 한다. 당시 나는 이렇게 주장했지만 장차 산별노조 조직운영에서 이것이 문제가 됐을 때 법원이 그렇게 노조법을 해석·적용할 것인지가 걱정이 됐다. 법원은 지부·지회 등이라도 실질적으로 노조와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면 단위노조에 준하는 것으로 취급해서 판결해 왔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규약 및 집행기관을 가지고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지부·지회 등은 단위노조에 준해서 교섭하고 쟁의할 수 있다는 판례를 두고서 나는 장차 산별노조 조직운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비해서 노조규약을 검토하고 지부규정에서 절차적 통제를 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뒤 걱정은 현실이 됐다. 어렵게 건설한 산별노조는 규약에 따라 조직운영을 하지 못하고 기업노조였던 지부·지회에 흔들렸다. 산별노조에 있다고 규약에 명시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기업노조 당시와 다름없이 조직의 운영과 활동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교섭체결권은 지부·지회의 것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바로 이 지점을 파고 들었다. ‘형식적으로는 위임행위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단위의 지부·지회가 교섭하고 쟁의하며 협약을 체결하니 노동조합에 준해서 볼 수 있다. 그러니 노조가 하는 조직형태변경을 이런 지부·지회가 할 수 있다’는 판결이 법원에서 선고되기도 했다. 지부·지회의 조직형태변경에 관한 법원의 주된 판례는 이러한 태도를 취해 왔다. 산별노조 규약에서 산별노조만이 교섭 및 협약체결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서 위와 같이 그 실질을 따져 조직형태변경의 효력을 인정해 왔다. 규약에 따라 노조가 조직운영을 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지부·지회가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나는 금속노조 법률원장도 아니고 이번 사건의 대리인 변호사도 아니다. 금속노조의 일이 내 일일 수는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3. 지부·지회 등 노동조합 하부조직의 조직형태변경,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게는 오래된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금속노조 설립을 앞둔 15년 전에 발표했던 노동법 논문에서 나는 노조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런 사태를 걱정해서였다. 향후 있을지 모를 다른 해석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법원이 지부·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효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어떻게 결론을 지을 것인가. 대법원이 실질을 따져 노조에 준하는 지부·지회는 가능하다고 하거나 지부·지회 등 노동조합의 하부조직은 아예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가능하다고 판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단 등 민법상 단체법의 법리에도 명백히 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부·지회 등이 노조에 준해서 볼 실질이 인정된다며 조직형태변경을 인정하는 종전 판례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다. 어떤 지부·지회 등이 여기에 해당하느냐가 논란이 될 수 있는데, 독자적인 규약 및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된 단체로서 활동한다며 규약상 지부·지회 등의 교섭체결권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이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하게 되면 산별노조는 위험하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발레오만도에서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지회가 노조에 준해서 볼 실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급심 법원에서는 그 효력을 부인했었다. 이러한 실질의 지회라면 대법원은 노동조합이 아닌 하부조직은 안 된다고 판단하든, 그 실질을 따져 노조에 준해서 볼 지회가 아니라면서 판단을 하든 지회의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결해야 마땅하다.

4. 사실 산별노조도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총의에 따라 조직의 운영과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기업노조에서 조합원의 총의에 따라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통해서 산별노조 지부·지회로 전환한 것처럼 산별노조 지부·지회에서 기업노조로 전환하는 결의도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이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었고, 실제로 그에 따라 조직형태변경을 통해서 산별노조를 이탈하는 경우가 있었다. 앞에서 산별노조 지부·지회는 안 된다고 밝힌 내 주장은 어디까지나 법리적 주장이다. 현행법상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허용하게 되면 허용하지 않는 때보다 산별노조는 위험하다. 그러나 결국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총의로 조직돼서 활동하는 노동자의 단결체다. 아무리 법적으로 산별노조의 조직운영을 보장한다고 해도 산별노조의 활동에 조합원을 묶어세워 내지 못하고서는 노동조합으로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없다. 이것은 다른 노동조합처럼 산별노조도 조합원의 권리를 위해 교섭과 투쟁을 할 때에 획득할 수 있다. 산별노조가 지부·지회의 조직형태변경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산별노조가 그 활동을 통해서 종전 기업노조였던 지부·지회의 조합원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도 ‘15만 금속노조가 하나’로 교섭과 투쟁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산별노조는 정녕 위험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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