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이 펼쳐졌다. 한국노총이 8일 노사정 협상 결렬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에 있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협상 당사자인 김 위원장은 그간 자제했던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김 위원장은 “재벌대기업에 집중된 부와 소득이 중소기업·하청업체·노동자에게 흘러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해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적어도 노동시장 양극화와 청년실업은 (정규직) 노동자 탓이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러면서 한국노총이 요구한 5개 수용불가 조항을 받아 주면 다시 협상에 응할 수 있다고 했다. 여지는 남긴 셈이다. 고용노동부도 노사정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러니 결렬 선언 후 노동정국을 예측하기 어렵다. 결렬 선언은 했지만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는 묘한 상황이다.

이럴 땐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보는 게 유익하다. 비정규직 관련법이 17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2006년 2월27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은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 이경재 의원이었다.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관련법은 통과되기 어려웠다. 앞서 노사정은 2005년 3월부터 6월까지 국회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민주노총도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비정규직 관련법을 두고 설전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국회 환노위 여야는 논란 끝에 비정규직 관련법 수정합의안을 마련했다. 현재의 기간·파견제 2년 고용기간 제한과 직접고용 의무, 차별처우를 금지하는 법률안이 그것이다. 환노위 소속 열린우리당(여)과 민주노동당(야)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파견제 고용의제 유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했지만 끝내 관철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의 상황과 겹쳐진다. 19대 국회 환노위 의장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영주 의원이다. 17·19대 모두 야당 출신 환노위 의장이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게 됐다.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법안이 환노위에 계류되는 것도 같은 조건이다. 공교롭게도 한국노총 노사정 협상 결렬 선언에 앞서 지난 7일 임시국회도 개원했다. 결렬된 노사정 협상의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공무원연금 관련 국민대타협기구에서 합의되지 않아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전면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사정 협상을 주도한 정부와 노동계의 행보는 어떨까. 합의 도출에 실패한 정부부터 살펴보자. 정부는 한국노총과의 협상뿐 아니라 국회 입법 작업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정 협상에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단독 입법을 타진하는 것이다. 이미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들은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단독입법 추진을 검토했다. 남은 것은 정부안이 제출되는 시기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의 논의 여부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선 국회 논의 여부를 보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편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과제 가운데 법률개정 사항이 아닌 것은 어떻게 될까.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과 같은 행정지침을 마련해 개별 사업장 지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 관련 절차와 기준이 여기에 해당한다. 때마침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이 본격화되는 4월이다. 노동부는 노사정 협상을 이유로 보류한 가이드라인 발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이다. 노사정 협상 결렬에 따른 경영계의 거센 요구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대응은 정부 행보에 맞춰져 있다. 병행전략이다. 우선 ‘협상’이다. 결렬선언을 한 한국노총은 자연스레 활동무대를 국회 환노위로 옮겨 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이 제출돼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될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민주노총도 여기에 가세할 것이다. 다음은 ‘저지’다. 민주노총은 이달 24일 노동시장 개악저지 총파업을 예고했다. 한국노총도 이달 16일 전국단위노조대표자대회와 다음달 1일 노동절 대규모 집회를 추진한다. 본격적인 노사 간 단체교섭 시즌도 개막된다. 노동계는 노동부의 취업규칙·일반해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현장에서 막겠다는 구상이다. 17대 국회 시절과 같이 노동계는 협상과 투쟁을 병행하는 국면으로 넘어간 셈이다. 17대 국회와 달리 19대 국회에선 어떤 결과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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