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 회의장을 가 보면 흔히 연출되는 장면이 있다. 꾸짖는 야당과 해명하는 정부기관. 여당은 상황에 따라 야당도 거들었다가, 행정부도 거든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 헌법 불합치 판결에 따라 문을 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업무보고를 하는 소관기관을 공격하는 새누리당과 고개 숙이지 않는 행정기관. 거기에 정부기관 편을 거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의원들.

비슷한 전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색다른 풍경이다. 주인공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1대 3에서 1대 2로 줄이라고 판결하자 올해 2월 국회에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제출했다.

핵심은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두되 총 의석수는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유사한 방식이다.

현행 지역구 246석 대 비례대표 54석을 지역구 200석 대 비례대표 100석으로 조정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소수·진보 정당이 주장해 온 선거제도 개혁방안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달 1일 중앙선관위가 정개특위에 첫 업무보고를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새누리당 의원들은 거친 표현을 써 가며 중앙선관위를 꾸짖었다. 선거구별 인구수 편차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식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될 경우 지역과 농·어촌을 대변할 의석이 줄어 국토 균형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헌법적 가치가 보다 큰 평등선거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앙선관위는 한발 더 나아가 "향후 구성될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정치인을 배제하고, 결정사항에 대해 특위 수정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열린 정개특위 3차 전체회의에서는 중앙선관위의 수정권 제한 의견을 두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야당과 “재논의를 해야 한다”는 여당이 맞섰다. 여당은 중앙선관위 제안 중 핵심 내용인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배분에 대해서는 딱히 말이 없다.

보통 정부기관이 발표하는 대책은 수동적이고 면피용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중앙선관위가 야당의 박수를 받으며 여당과 대치할 만큼 개혁적인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와 집권여당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정기관은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선거제도에 눈감고 지나칠 수 없는 오류가 있다는 점을 주무기관이 인정한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간만에 찾아온 정치개혁의 적기다. 게다가 정치에 대한 염증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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