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지금까지 정부와 재계는 청년일자리를 볼모로 노동계를 협박하며 ‘불안정 노동 확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대타협을 종용해 왔다. 그들이 외치는 대타협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에 숨겨진 진실을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사일 뿐이다. 사회적 대타협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공공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동시에 내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노사정 논의는 출발부터 합의의 불가능함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미 절벽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책을 책상 위에 펼쳐 두고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 한국노총의 책임감 있는 선언은 정당한 결정이고 당연한 결론이다. 이제 협상은 끝났다.

노사정 협상이 결렬된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앞으로 100만개의 청년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아주 대놓고 고용감축을 예고하는 망언을 내뱉었다. 고용창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며 청년실업자를 양산한 장본인들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경총은 열정페이 헐값노동, 블랙기업 노동착취로 상처받으며 노동빈곤의 절망에 쓰러져 가는 청년들을 더 이상 모욕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비용절감과 효율성이라는 지상의 목표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몫을 마음대로 빼앗아 왔다. 그들은 경제성장의 성과를 독식하면서 수백조원이 넘는 돈을 저축했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중요한 고용은 늘어나지 않았고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기업소득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가계소득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고,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사이 노동자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재벌과 대기업이야말로 ‘고용확대와 임금인상 없는 그들만의 성장’을 추구하며 사회 전체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다.

진정으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부터 대폭 인상해야 한다. 상위 일자리의 고용안정성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에서부터 일자리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필두로 대기업 규제 등의 적극적인 정책조합을 통해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고 사회 전체의 부가 임금과 고용으로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청년일자리 문제 또한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시작으로 불안정·저임금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고 일자리ㆍ소득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일자리는 이미 존재하지만 그것의 질이 너무 낮기 때문에 청년들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ㆍ중소기업 일자리가 ‘가교’나 ‘사다리’가 되기보다는 ‘함정’이나 ‘늪’이 되는 노동시장 조건에서 청년들은 각자의 일생을 걸고 최대한 합리적이고 필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구인구직 미스매치 또한 노동수요 측면에서 ‘일자리 질’에 대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양적 접근’ 이전에 비정규직에 대한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저임금 일자리의 임금 수준을 향상시키는 등 기존 일자리의 질을 높여 나가는 ‘질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최저임금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저임금 생산구조에 의존하고 있는 한계 상태의 기업을 퇴출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진다. 임금 수준이 향상돼야 중소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선택, 즉 청년구직자의 노동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 인적자원 유입에 의해 중소기업도 장기적으로 생산성ㆍ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그것이 다시 괜찮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일자리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청년일자리를 위한 것이라고? 정부와 재계가 조금은 솔직해지길 바란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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