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논의시한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9월 특위가 만들어진 계기 자체가 통상임금·노동시간단축·정년연장 등 이른바 3대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 때문이었다. 사용자 주도로 통상임금을 축소하고 위법한 연장근로를 시켜 온 관행에 대해 노동부가 법적 근거가 없는 지침 등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판례와 충돌하게 되자, 아예 입법으로 돌파해 보자는 정부의 의지가 그것이다.

6개월여의 특위 논의를 돌아보면 사용자 책임은 실종됐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정부가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듯이, 청년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데에는 1990년대 말 이후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비정규직·외주화를 중심으로 고용을 재편한 자본의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정규직 신규채용은 사실상 중단하고 필요한 인력은 사내하청으로만 충원한 현대자동차나 수리기사의 97%를 협력업체를 통해 사용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세계 1위 서비스를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은 전체 노동자의 90% 가까이가 하청·용역으로 고용돼 있다.

이처럼 재벌대기업이 앞장서 좋은 일자리를 열악한 일자리로 대체하는데 정부는 손놓고 있거나 아니면 비정규직 확산을 사실상 부추겨 왔다. 2013년 현재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522조원에 달하는 반면 실물투자액은 7조원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부를 독식한 재벌이 고용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도록 만들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정부와 노사정위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대부분 재벌대기업의 비정규직 활용을 사실상 지원하는 방안이다. 원·하청 공동직업훈련을 불법파견의 판단 징표에서 제외하겠다는 대책이 대표적이다. 원청이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를 상대로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을 가려내는 판단기준으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재정적 지원도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자신의 업무를 담당할 수리기사를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채용하고, 삼성전자서비스아카데미에 입소시켜 3개월간 교육시키고, 월·분기·반년마다 교육 및 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고용보험법 등에 근거한 국가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으로 인정받아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아 왔다.

2013년 한 해에만 원·하청 공동직업훈련에 고용보험기금 970억원이 지원됐다. 수혜자들은 대부분 조선·철강·자동차·정보통신산업 원청들이다. 쉽게 말해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쓰여야 할 고용보험기금이 재벌대기업의 하청·간접고용 활용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는 재벌대기업이 불법파견 시비를 벗어날 수 있도록 불법파견 판단 징표도 고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는 사용자 책임을 철저히 은폐하면서 노사대등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은 아예 논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정부가 손을 놓아 버린 사용자 책임을 구현하는 가장 현실적 방안은 ‘진짜 사장’을 찾아 나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간접고용·특수고용을 활용해 필요한 노동력을 기업의 경계 외부에서 사용하는 자본에 맞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싸우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싸움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산업적으로 만연한 불법적 관행을 바로잡는 데에도 기여한다.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서도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확대하는 노조법 제2조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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