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난리다. 비정규직.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를 말한다. 정규직과 달리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거나(기간제) 8시간 전일제가 아니거나(단시간제) 자신을 고용하고 사용하는 사용자가 하나가 아닌 고용형태(파견제)의 노동자를 말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이 2014년 3월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1천840만명 중 정규직은 1천17만명, 비정규직은 823만명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44.7%로, 이 나라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인 것이다. 그러니 비정규직 문제를 놓아 두고서는 이 나라에서 노동문제를 말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정부는 지난해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지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주된 논의 대상인 비정규직 대책이다.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대책이긴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도록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고용을 유연화해서 임금수준을 낮추고 해고를 쉽게 해서 정규직을 사용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기간제 사용기간을 늘리고, 파견업무를 확대해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데에도 부담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었다. 비정규직을 위하는 대책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대책이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대책에서 비정규직은 없다. 이 정부안을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이라고 평가하고 비정규직단체와 노동조합이 반대해 왔던 것은 당연했다. 정부, 이 나라 권력에게는 비정규직 문제도 청년실업 문제도 높은 임금과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 정규직 탓이었다. 그러니 대기업 정규직의 권리를 확보해서 지키고 있는 대기업노조가 개혁의 걸림돌이다. 권력은 이 나라에서 노동문제의 해답을 대기업 정규직에서 찾았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발간한 <임금 없는 성장의 국제비교>을 읽어보면, 1997~2002년의 5년과 2002~2007년의 5년 동안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은 각각 21%와 17.4%로 같은 기간 중 실질임금 증가율 19.4%와 17.6%와 비슷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2007~2012년의 5년간 실질생산성은 9.8% 증가한 반면 실질임금은 오히려 2.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기업의 사내유보율은 2002년 89.5%, 2003년 88.4%, 2004년 88.9%였으나 2006년에는 92.1%, 2012년에는 95.2%로 크게 증가했다. 기업이 처분 가능한 이익 중에서 2002년에는 10.5%를 임금 등으로 배분했지만 2012년에는 4.8%만을 배분하고 나머지는 회사 내에 보유했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288조원에서 522조원으로 81.2% 증가했고, 2014년에는 10대 재벌의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만 504조원에 이른다고 조사됐다고 지난 3월 보도되기도 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져서 이 나라 대기업에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둘 정도로 이익을 실현해 왔음에도 이 나라에서 자본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고용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낮추고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이 권력이 내세운 노동개혁이다. 자본을 탓해야 하는데도 권력은 노동자를 탓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떠들어 대도, 노동자를 위한 개혁은 아니고, 비정규직을 위하는 나라는 없다.

2. 언론은 “대기업은 사내하도급, 중소기업은 비정규직”이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비정규직 사용실태를 말했다. 대기업에서는 사내하도급을 통해서 사용하고, 그에 비해 중소기업은 직접 비정규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실제로 그런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소기업이라면 다른 업체와 사내하도급을 통해 노동력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대기업은 그것이 쉬울 것 같긴 하다. 사업장 여건과 사업 규모상 중소기업은 소사장제가 아닌 사내하도급을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대기업은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하도급은 도급계약을 통해 원청업체가 사내하청업체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실체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니 파견근로가 문제 된다. 사용자들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하는 것이니 사내하청업체의 근로자일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일부 노동자들은 원청이 자신의 사용자라고 파견근로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사내하도급 소속 노동자는 곧바로 비정규직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사내하도급이 근로자파견이라고 법적인 평가를 받고서야 파견근로자로서 비정규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사내하도급의 근로자는 비정규직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노동자는 주장하지만, 그중 일부만 파견근로자라고 이 세상의 법은 인정하는 것이다. 법이, 이 나라에서 법원이 원청업체가 사용자라고 선언해 줄 것인가. 오늘 이 나라에서 자본과 노동의 전선은 사내하도급 근로를 둘러싸고 법적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노조의 주장과 투쟁도 거기에 머물러 있다. 법적으로 파견근로자라고 그래서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고, 법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라고 정규직이라고 주장하며 노동과 자본이 법적으로 자신이 올바르다고 투쟁하고 있다. 거기까지다. 사내하청이 사내하청 노동이 파견근로가 아니라도 도급이라도 결국 원청의 사업을 위해 원청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것이니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 나라에선 노동자가 주장하고 노조가 투쟁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파견근로라고 법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파견근로가 문제가 되니 이제 사내하도급으로 노동자를 사용해 오던 대기업 사용자는 사내하도급이 아닌 비정규직을 사용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에서 촉탁직이라며 계약직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고 보면 “대기업은 사내하도급, 중소기업은 비정규직”이라는 보도는 과거의 비정규직 사용실태를 뒤늦게 보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업단위 노조조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금속노조 지부가 존재하는 현대자동차에서 광범위하게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차만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이 나라에서 수많은 사업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반대하는 노조조차도 사업장에서 노동자 권리를 위해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사용 반대를 주장해 저지해 내지 못했다. 2014년 3월 기준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1.9%밖에 되지 않는다. 정규직(20.8%)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은 100명 중 2명만이 노조로 조직돼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권력의 비정규직 대책에 반대하고 사업장에서 정규직화를 주장해서 투쟁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상과 같이 노동자, 노조에게 없다. 비정규직을 위하는 나라를 위한 노조는 없다.

3. 수백조원에 이른다는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을 1%만 사용해도 해당 대기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를 대기업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가 있다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주장했다. 지난 1월이었다. 1년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재원으로 1%를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 주장을 용인행 좌석버스에서 스마트폰 뉴스로 이렇게 제멋대로 읽으면서 나는 어째서 정년퇴직까지면 그 몇 십배라고 경영계라는 사용자단체와 사용자를 편드는 권력은 반박하지 않는 것일까, 고작 이런 것이 궁금했다.

물론 이런 통계자료 분석을 통한 논리적 주장으로는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이 될 수는 없다. 서희의 세 치 혀는 거란군을 물리쳤다지만 그건 거란이 고려가 자신들과 더는 적대하지 않을 거라는, 침략을 통해 하려던 바가 달성됐으니 굳이 중원을 도모할 군사력을 고려에 소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였지 결코 서희의 혀가 무서워서는 아니었듯이 말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결국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이냐 아니면 비정규직으로 남겨 둘 것이냐 하는 것이다. 전자라면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금지해야 하고, 후자라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면 된다. 전자가 길이라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해야 하고, 후자가 길이라면 비정규직 투쟁으로 비정규직 사용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선 누구나 비정규직을 말한다. 모두가 비정규 노동자 권리보장을 말한다. 비정규직노조도 정규직노조도 노총도, 새누리당도 대통령도 그리고 심지어 경총 등 사용자단체도 비정규직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보호는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대로면 이 나라는 비정규직을 위하는 나라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게 나서지 않는다. 법적으로 파견법·기간제법상 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 거 말고 그래서 사용자에 정규직으로 인정하라는 거 말고는, 심지어 이 나라에선 노동운동조차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자본과 노골적으로 그 편을 드는 권력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 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며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의 권리를 낮춰 비정규직도 정규직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비정규직 대책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다. 이 나라 노동자에게는 비정규직을 위하는 나라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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