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근로자가 건강해야 경제가 삽니다.”

심운택(88·사진)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의 말이다. 산업의학계 원로인 그는 진료실 대신 공장과 검진버스에서 환자를 돌봤다. 산업화의 병폐가 사업장 곳곳에서 드러나던 시기였다. 1988년 섬유회사 원진레이온에서 발생한 이황화탄소 직업병 참사가 한 예다.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노동자는 지금까지 130여명에 달한다. "잘살아 보세"를 외쳤지만 잘살아 보지 못한 채 병든 노동자들이 그의 환자였다.

심운택 회장은 91년 협회 대전충남지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2013년 협회 7대 회장에 취임했다. 충남대 의과대학 학장과 보건대학원 원장을 지낸 그가 정년퇴임한 뒤 노동현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심 회장은 “60년 넘게 의사 생활을 하면서 근로자들과 함께했던 기간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1세대 직업환경의학전문의(옛 산업의학전문의)인 그는 산업의학 기초를 세운 고 조규상 가톨릭대 교수와 함께 산업의학 외길을 걸어왔다. 96년 산업의학전문의 제도가 도입될 당시만 해도 협회 소속 의사는 40여명에 불과했다. 현재는 140명의 의사가 12개 시·도지부 18개 산업보건센터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협회 본부에서 심 회장을 만났다. 그는 고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산업의학과 협회의 발전방향을 설명했다.

협회는 산업보건 전문기관으로 사업자의 위탁을 받아 근로자 보건관리·건강진단과 작업환경을 측정하는 비영리법인이다. 63년 보건사회부 인가를 받아 설립됐다. 92년에는 노동부로부터 특수건강진단 실시 주관기관으로 지정됐다.

“노동현장 쫓다 보니 나이 많아도 건강”

협회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관리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사와 보건관리자의 요구에 따라 설립됐다. 진폐증을 앓고 있는 광산노동자의 작업환경을 조사한 최영대 가톨릭대 교수와 조규상 교수가 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협회는 사업장 1천773곳에 근무하는 노동자 14만3천558명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했다.

지금은 규모가 5배 이상 확장됐다. 지난해 협회는 78만3천863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일반건강진단과 특수건강진단을 했다. 협회가 위탁받은 사업장은 5천100여곳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500명 미만 사업장에 1명 이상의 보건관리자(의사·간호사 등)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 산업보건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는데.

“충남대 의과대학 교수로 있던 80년대부터 산업보건 분야에 발을 디뎠다. 본격적으로 협회 일을 한 건 91년이었으니 오랜 기간 이 분야에서 일했다. 당시만 해도 교통이 참 불편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전에는 충남 서천군에 갔다가 오후에는 논산에서 검진했다.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한 명을 만나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직원들이랑 동고동락했는데, 집에 1주일씩 못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고생 참 많이 했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도입되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왔을 때 손짓 발짓 섞어 가며 검진을 했던 기억이 난다.”

- 고령이신데 협회 일을 하는 데 지장은 없나.

“사업장 다니면서 근로자 만나러 다닌 게 도움이 됐는지 지금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 술과 담배를 안 하고, 채식 위주로 식생활을 한다. 산책을 자주 한다. 집이 대전이라서 서울과 대전을 매일 왕복한다.”

“의사 초과검진, 법-현실 괴리 감안해야”

지난해 협회는 산안법이 정한 인원보다 많은 근로자의 보건관리 업무를 담당한 사실이 드러나 홍역을 치렀다. 산안법 시행규칙은 의사 1명당 사업장 100곳 또는 환자 1만명을 관리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최소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게 문제였다. 협회 소속 몇몇 지역센터는 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수급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협회 인력은 정해져 있는 반면 보건관리 업무를 위탁한 사업장의 근로자수는 유동적이다. 심 회장은 “산업도 변하고 시대도 변했는데 관련법은 현실에 맞게 변하지 않았다”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늘지 않아 현장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 법이 정한 인원보다 많은 보건관리 업무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현장과 행정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다. 위탁받은 사업장의 근로자가 100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지난해 100명이었는데 올해 110명으로 늘었다면 10명을 추가로 검진하게 돼 현행법 위반이 된다. 그런데 의사 입장에서 10명을 검진하지 않고 올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하루에 100명 정도 검진하면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인원을 제한했다. 하지만 사업장 인원은 유동적으로 변한다. 10명을 더 검진한다고 검진의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협회 인력과 현장 상황에 맞춰 운영했을 뿐이다.”

- 협회 의사들이 나이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평균 연령이 45세, 일반 병원은 57세다. 산업의학전문의가 나이가 가장 많다. 협회 소속 의사의 평균 연령은 72세다. 매년 3천명의 의사가 배출되는데 이 중 산업의학전문의는 28~30명 수준이다. 이 중 35%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20%는 연구·진료 업무를 한다. 전문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고령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핀란드에는 500명이 넘는 산업의학전문의가 있다. 우리나라는 230명밖에 없다. 지난해 140명의 전문의가 33만3천건의 특수건강진단을 했다. 그럼에도 검사 결과가 잘못된 적은 없었다. 산업현장은 변하고, 영세사업장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관계부처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신뢰받는 산업보건기관으로 재도약하겠다”

협회는 올해 ‘VISION 2016’을 목표로 경영혁신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심 회장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이고, 능동적인 보건관리를 통해 고품질 서비스로 신뢰받는 전문기관을 만들겠다”며 “올해는 내실경영·열린경영·상생경영을 목표했다”고 말했다.

- 2000년부터 경영혁신운동을 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다른 산업보건단체들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협회 운영이 양적인 성장에 치우쳤다는 판단을 했다. 이대로 가면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산업보건 업무의 질적인 성장을 위해 5년 단위로 경영혁신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전문컨설팅 업체를 통해 협회 사업과 인력 등 경영 전반을 점검받았다. 경영 효율화와 업무 내실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업무프로세스를 개선해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노사문화를 이전보다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공헌사업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신뢰받는 산업보건 전문기관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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