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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질서 구축원리는 인류사적으로 다양했으나 오늘날 세계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방식은 바로 민주주의(democracy)다. 민주주의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권력의 근원을 하늘에서도, 신(神)에서도,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릴 세도를 지닌 특정 가문에서도, 그리고 총구에서도 찾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이 국민대중(people)으로부터 나오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위한 의사결정(self-determination)을 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든, 공동체에 있어서든, 아니면 국가적으로든, 민주주의는 해당 사회단위 운영을 민주적으로(democratically) 결정하는 것이 정의(justice)에 부합하고 집단의 건강한 지속에 기여한다고 간주한다. 그러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시스템 내적으로 체화하며, 그러한 가치들이 조화를 이뤄 갈 것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사회에서 간주하는 정의로움의 가치는 한 사회 구석구석에 내재하고 또 숨 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단 투표장이나 국회에서만이 아니다. 경제현장과 일터, 산업의 장, 직업세계, 그리고 일자리에서도 그러하다.

90년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주화의 도상에서 한껏 고무됐던 한국 산업사회학자들은 민주주의가 공장 문 앞에서 멈췄다고 개탄했다. 공장 안 민주주의 부재상황을 들춰 내고 분석하면서, 그 안에도 민주주의가 꽃피길 기원했다. 노동이 자본에 예속돼 신음하는 일터가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존중받고 자본과 함께 서로 대등하게 생산을 감당해 나가는 주체로 일어서기를 꿈꿨다. 노동이 연대(solidarity)를 지향하고 노동 내부 차별을 없애며, 평등과 복지가 번영과 함께 잘 어우러진 사회를 가꿔 가는 주체로 스스로를 정치화하고 또 사회화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그들의 꿈은 지난 20년간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문제가 돼서 왜, 그랬을까. 왜 우리 민주주의는 산업의 담을, 생산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뿌리내리며, 광범위한 노동대중 연대를 형성시켜 내는 쪽으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노동의 권력자원이 부족했고, 국가와 자본의 자원이 우월하고 전략이 교묘했다고 결론지으면 그만일까.

선배들의 뒤안길에서 나는 계속해서 노동연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학원생으로서 미국 노동사회학자 로웰 터너(Lorwell Turner)의 명저 ‘일자리에서의 민주주의(Democracy at Work)’를 수업시간에 일독했던 때가 어언 20년 전이다.

이 시점에서 누군가 일자리와 민주주의 문제에 초점을 둔 고민을 요모조모 정리하며, 우리 사회에서 그 둘 간의 결합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따져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생산과 민주주의가, 노동과 정의가 만나는 꿈을 계속해서, 그러면서도 새롭게 꿀 때가 되지 않았나 자문해 보곤 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매일노동뉴스>가 지면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이 기회에 한번 변화된 조건하에서 우리 사회 일자리와 민주주의와 관련한 나의 설익었으나 공유하고픈 성찰을, 정답은 없지만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문제제기를, 뚜렷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대안모색의 인식적 결과를 지면에 담아 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일자리에서의(at work)”, “일자리를 둘러싼(around work)”, “일자리를 향한(towards work)”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어디까지 발전해 있고, 어디가 얼마나 무너져 있으며, 어떻게 재건돼야 하는지에 대한 탐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태도하에서 일자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기반,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시선, 행위자들의 태도와 정향 및 그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의 이해추구와 권력행위의 근원을 따져 보기도 할 것이다. 일자리와 그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관계가 형성하고 있는 우리나라 시스템의 불안정성·비효율·부조리와 부정의를 꼬집으며, 일자리를 매개로 이뤄져야 할 바람직한 사회통합의 상도 그려 볼 것이다.

우리 사회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지배담론이 이상적이라고 간주하고, 심지어 강요하는 노동 혹은 노사관계의 노동정책 상과 그것을 제시하는 방식을 뒤집어 보며, 그 안에 작동하는 권력의 메커니즘도 파헤쳐 볼 것이다.

일상적인 노동의 소소한 공간에서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작은 해방을 꿈꾸며 각성해 가고, 공모해 가며, 답을 더듬고 있는 작은 사람들의 귀한 몸짓을 발굴해 박수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궁극에 이 사회에서 정의와 민주주의의 성숙이라고 하는 보편적이고 공익적인 가치의 실현이 일자리 영역을 비켜 나가지 않고, 되레 빛을 발할 방도를 독자들과 함께 모색해 가는 기회로 이 글자리를 삼고자 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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