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510일 이랜드 장기파업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외박>. 나와 동갑내기인 김미례 감독의 피땀이 오롯이 밴 역작이다.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감독의 요청으로 지난 투쟁의 중요한 사안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당시 김미례 감독의 방에 쌓인 수많은 모노테이프를 보면서 질렸다. <외박>에 짧게 담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관련 영상만 4시간여가 넘었다. 길어질 줄 미처 예상 못한 채로 결합했던 김미례 감독은 510일 파업투쟁 내내 기록자로 함께했다. 그 기간 동안 감당해야 할 고충이 오죽했으랴. 지금은 <외박>이 이랜드 투쟁을 당사자 관점에서 들여다본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남아 있다. 기록으로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참 소중하다는 걸 그때 느꼈다. 투쟁 주체들조차 긴박하고 지리한 투쟁의 일상 속에서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모로 다큐멘터리는 언론방송이 외면하기 일쑤인 노동자투쟁을 가감 없이 담는 가장 효과적이고 깊이 있는 매체다.

지난 월요일 오전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을 담은 반가운 다큐멘터리를 관람했다. <니가 필요해>다. <니가 필요해>는 완성차 사업장인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 대장정을 카메라로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만든 작품이다. 워낙 비정규 노동자들의 일상과 감정 동선을 세밀하게 잘 포착해 83분의 러닝타임이 후딱 지나갔다. 영화는 별다른 극적인 장치 없이 고지식할 정도로 담담하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일상과 생각을 애정 어린 눈길로 뒤따라갈 뿐이다. 간혹 감독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녹여 내레이션으로 반영해 이 영화를 편집한 감독이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도 했다.

김수목 감독의 끈기와 성실함, 의리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2007년 8월 만들어져 2014년까지 길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 온 비정규직 노동조합 투쟁을 다큐멘터리에 담는 건 사실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투쟁의 고비고비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시 힘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사이 여러 갈등과 배신 속에서도 투쟁주체가 아닌 영상기록자가 현장에 끝까지 남는 그 과정이 참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인간의 도리,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예의가 그런 것일 게다. 노동자 연대와 단결의 의미가 가 닿아야 할 어떤 경지다. 기록은 또 다른 투쟁의 현장이다.

아는 노동조합 간부들과 조합원들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 여러 번 연대하러 간 비정규직 사업장이라 더욱 남의 일이 아니었기에 내가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노사합의가 나오기 전 상급단체를 주축으로 한 지역공동대책위원회와 투쟁주체 사이에 만만찮은 갈등이 빚어질 때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다. 재미있었다. 이랜드 투쟁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참 판박이로 닮았구나 하고 절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갈등은 어느 사업장에서든 쌍생아처럼 반복되고 깊은 상처로 아로새겨진다. 언제나 우리는 극복할 수 있을까.

공동체 상영을 한다고 하니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속내를 이렇게 폭넓게 속 깊게 짚어 낸 다큐멘터리가 흔치 않기에 나부터 “많이 봐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비정규직 투쟁의 승패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일단 밀쳐 두자. 개개인이 감당한 고통과 우여곡절 끝에 이겨 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흥과 생각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판단이 무의해지는 순간이 있다. 고통스럽지만 투쟁을 이어 가며 끝내 어떤 결말로 자신의 정당함을, 인간의 자존을 확인하는 노동자들의 얼굴 표정이 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평가는 없다. 각설하고 지엠대우 비정규 노동자들과 교감하며 자신의 일상을 한번 되돌아보는 것은 또 하나의 온전한 연대 체험이다.

<니가 필요해>. <외박>만큼이나 잘 지은 이름이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손길은 바로 곁의 누군가이므로. 생각과 취미가 다르고 때론 투쟁에 대한 판단이 달라도 사람 사이 손 내밀어 함께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자본이 주도하는 돈 중심 사회에서 가뭇하게 사라진 사람의 자취,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받고 고통받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필요한 누군가가 되고픈 이들에게 <니가 필요해>가 필요하다. 정말 많은 이들이 일부러 찾아가 보기를 소망한다. 먼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이 앞다퉈 김수목 감독과 지엠대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야 할 시간이다. 당신의 관심이 필요한 <니가 필요해>를 ‘강추’한다. 생동하는 봄 꼭 시간 내시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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