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됐다고 야단이다. 마침내 경총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동결해서 청년실업을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지난 3월2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에서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연봉 6천만원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향후 5년간 동결해 그 재원으로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과 청년고용에 활용하는 방안 같은 내용이 논의돼야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3월 말로 정해 놓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합의시한을 앞두고 “고용경직성 완화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안정화가 합의문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형식적 합의에 그칠 것”이라며 이런 주장을 했다. 표현이 노골적이었다. 주장은 새롭지 않았다. 대통령도 경제부총리도 고용노동부 장관도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높다고, 초임의 두세 배라고, 호봉제 연공급 임금제도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동전문가라는 자들도 여기에 동조해서 말해 왔다. 청년실업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과 고용의 수준을 저하시켜서 해결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 왔다. 대기업 정규직의 높은 임금과 고용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노동시장 개혁을 말해 왔다. 경총의 주장만큼은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경총과 같은 주장을 해 왔다. 대기업 정규직이 문제다.
 


2. 대기업 정규직이 문제라고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던 때에 한국노동연구원은 ‘사업체 규모별 임금 및 근로조건 비교’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달 22일 발표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59만8천원과 204만원으로 조사됐다. 10년 전(대기업 238만원ㆍ중소기업 142만원)보다 모두 올랐지만 상대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을 100으로 할 때 2004년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59.8이었으나 2014년에는 56.7로 낮아졌다.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도 벌어졌다. 대기업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상대임금은 2004년 73.8%였으나 지난해 66.1%로 낮아졌다. 중소기업 역시 같은 기간 78.1%에서 68.4%로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상대임금 수준도 이 기간 41.6%에서 40.7%로 떨어졌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원 받을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7원만 받는다고 이 보고서를 인용해서 언론은 다투어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대기업 정규직이 100원 받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6.1원, 중소기업 정규직은 56.7원,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7원을 받는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임금 수준이 다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임금 수준이 다른 것은 해결해야 할 노동문제다. 개혁이 됐든 뭐가 됐든 이것은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에서는 이 문제의 해결방안을 말해 왔다. 대기업 정규직에 대해 임금 수준을 낮추고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게 고용을 유연화하는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이 해결방안이라고 말해 왔다. 대통령·경제부총리와 노동부 장관이 말해 온 해결방안이었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가 적극 지지하는 노동시장의 개혁이었다. 100원 받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낮춰서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이겠다는 것이 이들이 말해 온 노동시장 개혁 방안이었다. 그래서 그 개혁을 추진한다는 권력은 초임 대비 최고점 임금이 두세 배라는 현재의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근속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는 연공급 임금체계에서 벗어나 직무성과주의 임금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혁의 필요를 설명해 왔다. 지금 권력과 자본은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 문제다.
 


3. 대기업 정규직, 도대체 얼마를 받는다고 그의 임금을 동결하면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하는 것일까. 임금이 높으니 동결해야 한다고 자본이 말하고, 초임의 몇 배가 되지 않도록 낮춰야 한다고 권력이 말하는 그들은 누구일까. 이 나라에서 자본과 권력이 임금 권리를 낮춰야 한다며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기업 정규직은 누굴까. 대졸사원으로 채용된 대기업 정규직을 겨냥하고서 그들의 임금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말하는가.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대졸사원으로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그들을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대졸사원은 사무관리직이거나 전문기술직이다. 고임금의 대기업 정규직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1990년 후반 IMF 관리체제 이후 연봉제 등 직무성과의 임금제도가 다양하게 도입돼서 광범위하게 적용돼 왔다. 노조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도입됐고, 노조가 있어도 저항이 강력하지 않아서 혹은 그 저항을 무찌르고서 도입됐다. 노조가 있어도 현대차에서는 조합원이 아닌 관리직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체계가 연공급제라고 개혁해야 한다는 대기업 정규직은 이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호봉제 등 연공급 임금제는 대기업이라도 생산직에 주로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졸사원인 사무관리직·전문기술직의 임금이 높다고, 그래서 그들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자본과 권력이 말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노조로 조직돼 있지 않으니 사규와 법대로 얼마든지 해고할 수가 있다. 그러니 해고를 쉽게 하자는 고용유연화도 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개혁에 저항한다며 귀족노조니 뭐니 비난을 덧붙여 말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현대차·기아차 등 대기업의 생산직을 주로 겨냥하고서 하는 말이라고 들린다.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고용 수준을 비교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 마찬가지라는 전제에서 서로 비교가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더라도 나는 그렇게 들린다. 사실 그들이 하는 말은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그들이 이들만을 노리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주되게 겨냥하는 것은 이들이다. 고졸 생산직이 높은 임금을 받고 고용이 안정돼 있다고 그들은 그것이 불만이다. 고졸 생산직의 임금을 낮추고 고용을 유연화하면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그걸 귀족노조가 방해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조가 버티고 있으니 협상으로는 어려우니 법으로 강제해서 할 방법이 뭐냐고 노사정 합의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 사무관리직·전문기술직이야 회사규정을 바꿔 얼마든지 임금을 낮추고 고용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니 굳이 힘들여서 노사정 합의로 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도대체 얼마를 받는다고 이 야단일까. 대기업의 고졸 생산직이 얼마나 높은 임금을 받는다고 그걸 낮춰야 이 나라에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지난 몇 년 동안 통상임금 재판을 하다 보니 나도 그들의 임금을 알고 있다.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대기업인 현대차·기아차에서 근속 25년 내지 30년의 생산직은 회사가 지급하는 통상시급이 1만원 정도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줘야 한다고 지금 대표소송과 집단소송에서 청구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통상시급은 1만7천원 정도였다. 이들이 주 40시간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해서 받는 임금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도, 토요일을 유급으로 인정받아도 413만원(243x1만7천원)정도다. 연봉으로는 5천만원을 넘지 않는다. 학자금이나 회사 경영사정이 좋을 때 지급받는 성과금 등 임금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 금품을 제외하고서 임금은 이 정도다. 20대에 취업해서 30년 가까이 근무하고서 받는 임금이 이 정도면 높은가. 만약 당신이 잔업·특근 등 초과근로로 이들이 받는 것까지 포함해서 셈하고서 높은 임금 운운한다면 정말 염치없는 짓이다. 연장·야간·휴일근로에 연차미사용 근로로 부려먹고서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말하는 짓이다.
 


4. 솔직히 말해 보자.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두 가지 신분이 있다. 이 신분은 오랜 동안 대졸과 고졸로 이 나라에서는 정해졌다. 상급자와 하급자, 관리자와 복종하는 자, 머리와 손발로 구분돼서 사무관리직·전문기술직과 생산직·현장기능직으로, 타고 오를 사다리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서로 다른 신분의 노동자로 존재해 왔다. 오늘 그토록 심각한 노동문제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만큼,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드러나지 않고 있는 노동자의 서글픈 신분이 존재해 왔다. 이 나라에서는 주 5일,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이 그 신분을 구분 짓기도 한다. 법정근로시간이 자신의 노동시간인 노동자와 이걸 초과한 상시적인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하는 노동자로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주야맞교대로 장시간 근로를 했던 그들이 대기업 정규직이고, 지금도 장시간 근로에 허우적대며 주간에 주 5일을 주 40시간만 일하는 꿈을 꾸는 그들이 이 나라에서 자본과 권력이 그토록 개혁을 말하며 권리 수준을 낮추고자 하는 대기업 정규직이다. 그들의 권리 상태다. 이런 노동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말하려면, 임금수준은 주 40시간 법정근로를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으로 높은 것인지 비교해서 말해야 한다. 그래도 과연 당신들이 겨냥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개혁의 대상으로 겨냥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높은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이다. 그러니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 방안은 청년이 취업하고자 하는 임금과 고용 등 노동자권리를 보장하지 않고서는 해결 방안이 아니다. 고용이 유연화돼서 불안한 비정규직이라 취업하지 않으려 하니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려서 취업하지 않으려 하니 대기업 정규직 수준으로 임금·고용의 수준을 보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소기업·비정규직의 현저히 낮은 권리 상태가 문제다. 대기업 정규직이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비정규직이 문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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