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진 공인노무사(이석진공인노무사사무소)

내가 처음 노무사가 됐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만 해도 고용노동부 공무원들 중에는 고압적인 자세와 법령이나 절차를 위반해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많은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노동부를 찾았다가 실망과 절망감을 많이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외부의 비판과 문제제기, 자체적인 개혁을 통해 제도적으로도 많은 개선이 있었고 담당공무원들의 태도나 자세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 많은 노동부 공무원들에게 품었던 불만은 지금은 일부 공무원에게만 해당한다. 최소한 형식이나 절차적인 부분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가지 문제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고용노동지청에 근로자가 진정을 하면 담당근로감독관이 민원 내용을 보고 구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면 근로자에게 취하를 강요하면서 “노동부는 임금을 받아 주는 곳이 아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취하를 강요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사례는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담당근로감독관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받아 주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례가 많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국민신문고 등에도 이에 대한 민원이 올라오고 있고 나에게도 이런 감독관을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에 대해 문의하는 근로자가 많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근로감독관과 근로자가 같은 사안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근로감독관들은 기본적으로 임금체불 진정이 접수되면 이를 조사해 임금체불이 발생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사업주에게 임금지급을 명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검찰로 송치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면 근로감독관은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권한만 있을 뿐 임금을 강제로 징수해서 근로자에게 줄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내용만 들어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근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근로자들은 임금이 체불돼서 고용노동지청을 찾아갈 때 근로감독관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받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런 그들에게 근로감독관이 노동부는 임금을 받아 주는 곳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 근로자들은 엄청난 절망감을 느낀다. 이것은 법적 절차나 실제로 임금을 지급받는지 여부와 별개의 문제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근로감독관의 행동에 대해 다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근로자들만의 잘못일까. 근로감독관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답변하는 것이 옳고, 이런 민원을 제기한 근로자는 악성민원인인가. 그렇지 않다. 그 해결방법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에게 상담 온 근로자들에게 진정의 의미와 근로감독관의 권한, 그리고 차후의 진행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 10명 중 7~8명은 다 수긍하고 돌아간다. 사실 노동부는 임금체불에 대해 형사처벌만 하는 기관은 아니다.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는 기관이다.

많은 근로감독관들이 차고 넘치는 사건에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근로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근로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민원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노동부와 근로감독관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근로자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들은 희망을 가지고 노동부를 찾아간다. 이런 근로자들의 고충을 해결해 줄 의무가 근로감독관에게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한다면 근로자들도 그 결과에 관계없이 근로감독관을 신뢰할 것이다. 이것이 노동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민원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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