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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성 암 산재, 바뀐 게 없다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노동자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무엇보다 ‘암’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직업성 암은 다른 질병보다 산업재해로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2000년대를 평균하면 200여명이 산재를 신청했고, 매년 20건 정도만 승인됐다. 직업환경의학계의 평가에 따르면 암 환자의 4%는 직업 관련성이 있다. 한국은 암 환자가 2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4%인 8천명이 산재로 인정받아야 한다.

직업성 암 산재 승인율이 10%(암 추정치 기준 0.01%) 정도에 불과한데 왜 그런 것일까.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운동이 9년차에 접어들었는데 그간 직업성 암 산재 제도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2010년 이후 금속노조의 직업성 암 환자 찾기 사업으로 100명 가까이 산재가 승인된 바 있다. 신청 건수가 미미하고 직업성 암 환자 찾기 사업 효과가 컸다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들이 "암이 산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부 정책도 문제다. 우리나라 산재 통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산재가 승인되는 건에 한해 통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통계에 근거해 고용노동부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한다.

직업성 암 사건은 대부분 피해자가 사망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신청 기한, 즉 소멸시효는 3년이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에서도 3년2개월이 지나 산재 신청을 했다가 "업무관련성은 있지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된 적이 있었다. 산재 소멸시효가 국민연금법상 시효(5년)보다 짧다. 사망재해가 일반 요양급여 사건에 비해 보호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한 역학조사도 문제다. A조선소 노동자는 급성백혈병으로 산재를 신청했다. 역학조사기관은 "1997년 이후 회사에서 벤젠을 측정했는데도 벤젠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불승인 근거를 제시했다. 97년 기준은 10피피엠(ppm)이었는데 회사에서는 검출된 벤젠 농도가 10피피엠 이하여서 98년 이후에는 측정조차 하지 않았다. 이 기준은 2003년 1피피엠으로 변경됐다.

역학조사기관과 공단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지 않았고, 회사 자료만을 근거로 불승인 논리를 제공했다. 해당 사건은 결국 법원에서 “9개월 단기노출로 인한 백혈병”으로 산재로 승인됐다(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4두1895 판결).

이런 역학조사의 한계는 명확하다. 역학조사는 과거의 사실과 자료를 근거로 현재의 업무관련성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실과 자료는 항상 미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되레 불승인 근거로 작용한다. 최근 역학조사 관행에 대해 법원은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러한 사정은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함에 있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정황으로 참작함이 마땅하다”고 봤다(서울행정법원 2014. 11. 7 선고 2011구단8571 판결).

역학조사 이후 과정도 문제다. 역학조사평가위원회는 작업환경평가 분과를 거쳐 업무관련성평가 분과에서 사실상 산재 판단을 한다. 이어 결과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송부되는데, 결과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역학조사평가위와 질병판정위 모두 산업위생학이나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들이 판단의 주체다. 그렇지만 각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이 누구인지, 어떤 내용으로 논의되고 판단됐는지, 각 위원들이 세부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산재는 법률문제인데도 그 판단 과정은 사실상 “의학적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산재보험법 시행령 별표3에 규정된 각 직업성 암의 내용이 ‘예시적 기준’임에도 판단기구들은 ‘제한적 열거주의 방식’으로 결정하는 오류를 지속하고 있다(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2두24214 판결).

직업성 암 사건에서 노동자에게 "자신의 병과 유해물질 간의 관련성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과도하다. 이런 입증책임 전환 논의는 이미 7년 이상 진행됐지만 바뀐 것은 없다.

많은 역학조사가 부실했다는 것은 삼성백혈병 사건 외에도 지속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물질이 유해물질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노출되고 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물질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역학조사 과정에서 노동자와 대리인의 참여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인정기준이 확대되고 제도가 개선됐다”고 말한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권동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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