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에서 이뤄지고 있는 ‘내 손으로 짓는 통나무집 구들방 교육’ 현장에 와 있다. 7박8일 과정 중에서 오늘은 6일차로 서까래를 올리는 날. 은퇴한 60~70대 어르신부터 20~30대 젊은이가 한데 어울려 자기 몫의 서까래를 올리기 위해 각도를 재고 앵앵 톱질을 하고 있다.

내 손으로 대들보와 서까래를 올리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심지어 어제는 연약한 여자 몸으로 엔진톱을 들고 통나무에 홈을 파내는 작업을 했다. 처음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에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연장을 들고 있는 게 영 어색했다. 그러나 이내 반해 버렸다. 자동차 바퀴 돌아가듯 쉴 새 없이 톱날 돌아가는 엔진톱을 들고 아기 다루듯 살살 나무를 다듬는 내 모습에…. 불쑥 이참에 ‘여자 대목수’의 길로 나서 볼까 하는 무모한 야망이 솟구쳤을 정도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한 이번 교육은 70% 국비 지원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대상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남녀노소 누구나다. 그 때문인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이른바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게 됐다.

“아 놀면 뭐해? 마누라 눈치나 보며…. 공짜로 전철 타고 온천장 갔다가 점심 먹고 돌아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보다는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배우러 다니는 게 재밌어. 더 늦기 전에 고향으로 내려갈 궁리하며….”(70세 오아무개씨)

“지금 내 연봉이 1억2천만원이야. 하지만 은퇴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 준비해야지. 인생 제2막을.”(50대 조아무개씨)

“세무사인데요. 계산기 두드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삶이 좀 버겁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내 리듬대로 조용한 곳에서 한가롭게 살고 싶어요.”(40대 구아무개씨)

“직업 없어요.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고. 물론 돈도 없고…. 보다 자연친화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에 관심이 많은 청년백수랄까요?”(20대 한아무개씨)

저마다의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다. 언젠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소박한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싶다는 야망 아래 우리는 만났다. 소재는 나무와 흙. 대한민국 숲과 산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낙엽송으로 벽체를 만들고 흙과 돌을 채워 구들장 바닥을 만드는 방식이다. 수명이 다해 집을 허물게 되면 나무는 태우거나 재활용하면 되고 흙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된다. 그런 자연친화적인 생태 건축물을 내 손으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매우 고무돼 있다.

생각해 보면 문명이란 인간을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집을 지을 능력을 상실한 유일한 동물이 됐다고 할까. 무엇이든 제손으로 창조하던 인간의 후예들이 철저하게 분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창조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오직 구매력을 확보하는 삶에만 매진해 왔던 거다.

그 때문에 누구의 손으로 지어졌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 30년 또는 그 이상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사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한때는 아파트가 대한민국 성인남녀의 가장 현실적인 목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들 삶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얻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한편에선 불황이 사람들을 보다 소박한 창조자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집을 고치고 꾸미는 셀프 인테리어족이 대세를 이뤄 덩달아 'DIY 산업'이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처음부터 끝까지 제손으로 집을 짓고자 하는 이들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그런 이들을 위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을 읽어 주고 싶다.

“사람들이 손수 제 살 집을 짓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간소한 식량을 정직하게 마련한다면 그들 속의 시심(詩心)이 꽃을 피울지도 모를 일이다. 새들이 그런 일을 하면서 늘 노래를 부르듯이 말이다.”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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