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다룬 영화는 흔히 ‘감동적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휴머니즘 가득한’ 등의 수식어를 동반한다. 섬마을의 가난한 아이들(혹은 제3세계 가난한 아이들)이 마음씨 좋은(혹은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성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쫓겨난) 감독을 만나 고진감래 끝에 서울(혹은 국제대회)까지 진출해 우승(혹은 안타까운 패배)을 하는 휴먼 스토리 말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많고 또 눈물겨운 것이지만 때로는 진부하다는 느낌도 들게 한다. 이야기 그 자체가 진부한 게 아니라 그것을 풀어 나가는 이른바 스토리텔링 방식이 너무 공식적이고 뻔해서 오히려 실제 사건의 감동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단, 21세기의 초상(Zidane, Un Portrait Du Xxie Siecle)>은 어떠한가. 이 실험적인 영화는 아예 ‘감동’ 같은 말과는 무관하게 시작한다. 프랑스 출신 필립 파레노 감독과 스코틀랜드 출신 더글러스 고든 감독이 공동 연출한 <지단, 21세기의 초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 그 자체다. 2005년 4월23일 스페인 1부리그 비야레알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17대의 카메라로 찍었는데 오직 한 선수, 즉 지네딘 지단만 찍는다.

공동 연출자 필립 파레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21세기를 대표하는 한 남자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다. 지단이 이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지단은 축구팬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축구 이상의 뭔가를 보여 준 인물이다. 기획 때부터 우리는 지단을 염두에 뒀으며, 만약 그가 수락하지 않을 경우 이 모든 프로젝트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영화는 90분 가까이(지단은 89분께 퇴장 당한다) 지단만 계속 보여 준다. 처음에는 축구선수의 지루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점점 화면 속의 지단은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고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보인다. 이 실험적인 다큐 영화에 담긴 지단의 행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 전역의 현대인들이 나날이 겪는 감정의 연속들이다. 기대와 좌절, 환호와 한숨, 긴장과 이완, 몰입과 공허, 자학과 가학, 물러섬과 나아감, 애틋함과 애잔함 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필립 파레노가 “축구 이상의 뭔가를 보여 준 인물”이라고 한 말의 뜻이 그대로 화면에서 느껴진다.

지단은 1972년 6월23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지단의 부모는 1968년 알제리 카빌리 지역 아게몬 마을에서 파리로 이주했다가 마르세유로 옮겼다. 지단의 부모는 60년대 알제리 독립전쟁이라는 피의 수난을 겪은 뒤 카빌리를 떠나 파리를 거쳐 마르세유에 정착했다.

마르세유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항구도시다. 20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두 차례 세계대전과 그에 따른 대규모 이동에 의해 동유럽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60년대 이후에는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스며들었다.

지단의 부모도 그런 대열에 합류했다. 알제리계 사람들은 마르세유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모여 살았다. 지단의 아버지도 건물 경비 같은 일을 하며 가족을 책임졌다. 지단은 훗날 “그 가난한 동네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다양한 인종의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았다”고 회고했다. 이는 이 세상 모든 가난한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려서부터 축구에 뛰어난 자질을 보인 지단은 열네 살 때 AS 칸 스카우터의 주목을 받아 유스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열일곱 살 때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1992~1993 시즌에 지롱댕 드 보르도로 이적해 4년 동안 머물면서 UEFA 인터토토컵 및 95~96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선물했으며 이때 함께 뛴 빅상트 리자라쥐, 크리스토프 뒤가리 등과 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96년에는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해 리그 연속우승 및 3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1년에는 당시로서는 이적료 세계 최고액인 1천500억리라로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해 전성기를 누렸다.

네덜란드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는 “지단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을 언제나 올바른 타이밍에 활용할 줄 안다”고 평가했으며 80년대 프랑스 축구의 상징이자 현재 유럽축구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미셸 플라티니는 “그가 볼을 컨트롤하거나 받을 때 대적할 선수는 없다”고 극찬했다.

그런데 지단은 이렇게 경기장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중요한 ‘경기’를 치른 선수다. 지단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이다. 그가 주역이었던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은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3대 0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당시 개선문에는 지단의 거대한 초상 사진이 걸리기도 했다. 지단은 프랑스 축구대표팀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며 나아가 프랑스의 ‘인종 화합, 국민 통합’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단은 이러한 성공 신화에 도취되지 않았다. 극소수의 성공한 이민자 출신들을 영웅화해 프랑스의 이민 및 사회복지정책이 성공한 것처럼 포장하는 ‘보여 주기 쇼’를 지단은 거부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둔 시점인 그해 4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극우 보수파인 장 마리 르펜이 프랑스 진보주의를 대변하는 사회당의 조스팽을 누르고 결선까지 진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대표팀을 ‘인종의 쓰레기장’이라고 비난한 인물이 대통령 일보 직전까지 가자 지단은 언론매체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톨레랑스가 회복돼야 한다”고 외쳤다. 지단의 팀 동료들도 뒤를 이었다. 마르셀 드사이도 “르펜은 파시스트”라고 공격했고 로베르 피레도 “르펜이 집권하면 월드컵에 불참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르펜은 "지단은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축구나 계속하라"고 야유했다. 하지만 지단과 그의 동료들의 ‘경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 역할 덕분에 중도우파에 속하는 자크 시라크가 극우파 르펜을 누르고 당선됐다.

8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의 간판스타이자 소설가이며 레알 마드리드 기술고문으로 오랫동안 활약한 호르헤 발다노는 “지단의 스타일은 남미와 유럽 축구가 결합돼 있다. 경기장에서 그가 내리는 결정은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며 이것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선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에게 필적할 만한 선수들은 있겠지만 그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고 평가했다.

발다노의 평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야만 한다.

"축구장 안에서 지단을 능가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더욱이 그는 경기장 밖에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최선의 투쟁을 벌였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