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노동시장 구조개혁 문제에 대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논의시한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말 정부안을 내놓고는 3월까지 합의를 하라니 정부가 진정 사회적 대타협을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노사정위원회의 예정된 파행과 그 이후 정해 놓은 편리한 수순을 의도한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는 수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처리해도 괜찮은가. 정부는 왜 그렇게 다급할까.

정부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시종일관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중앙일간지 1면에 광고를 실어 ‘장그래’로 열연한 배우의 천진한 얼굴을 내세웠다. 우리 자녀들의 취업을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부모의 마음에 호소했다.

대통령은 얼마 전 중동에 다녀온 후 옛 시절 감상에 젖은 것인지 “우리나라에 청년들이 텅텅 빌 정도로 청년들을 중동으로 내보내라”는 문제의 발언을 했다. 정작 중동에서도 청년 일자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데, 대통령은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실패했다는 최종적 선언과 다를 바 없는 말을 부끄러움 없이 고백하고, 책임 있는 관료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화답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정부가 자랑하는 해외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느 청년이 체계적 교육·훈련은커녕 하루 12시간 단순노무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탈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지겹지도 않은가. 새로운 경험을 위해 해외로 나설 청년들 정도면 이미 충분히 도전하고 있다. 아니면 목숨을 걸고 오지에라도 가야 하는 걸까. 열악한 지위에 부당한 처우·반인권적 노동으로 상처받으면서도 정해진 기간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든 버텨 내고자 사력을 다했을 청년에게, 인턴 프로그램의 업무·교육 환경을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장관이 할 말은 아니다.

교육부 해외인턴이든 노동부 해외취업이든 1년에 몇 명 보냈다는 식으로 양적인 성과만 강조하다 보면, 청년들은 ‘글로벌 리더’가 아니라 ‘글로벌 호구’로 전락할 것이다. 해외취업에 희망이 있다고 청년들 등 떠밀지 말고 해야 할 일부터 제대로 하길 바란다.

2015년 2월 청년실업률이 11.1%를 기록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금의 실업률 상승이 정말 노동시장 환경 개선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청년인구가 증가한 긍정적 신호인가. 그것보다는 절벽 끝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이들이 마지못해 취업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상 ‘실질실업자’였던 청년층이 통계상 실업자로 옮겨 왔을 뿐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춰야, 그러니까 좋은 말로 노동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정확한 말로 ‘불안정성’을 높여야 청년층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이들에게 묻는다. 정말 청년을 위한 것인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결과가 청년에게 이롭게 돌아올 것이라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기업이 청년을 신규로 채용하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도록 만들 수단 자체가 없다. 노동시장을 규제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명한 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정규직 희망고문’을 없애려면, 계약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노동시장을 강제해야 한다. 청년들이 정규직 희망고문 때문에 힘들다고 했더니 그럼 정규직을 없애 주겠다고 답한 꼴이다. 희망을 없애면 그것 때문에 기대할 일도 없어질 테니 나름 합리적인 답변이다.

‘오상식 과장’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장그래’의 삶이 나아질 리 없다.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고 저성과자를 퇴출시켜 최상위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상향이동 가능성을 높이면 청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는가.

잘난 몇 사람이 그 틈에 치고 올라간다 치자. 그렇다면 남아 있는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는가. 보통의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일자리 사다리’ 자체가 없다.

괜찮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음에도 저축만 하고 있는 대기업에 고용책임을 묻고, 고용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 질을 개선해야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발생한 것은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 과보호’ 때문이다.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의 책임을 물을 정치적·사회적 조치와 공공의 적극적 개입 없이는 노동부 광고 속 ‘장그래’처럼 청년들이 웃게 될 날은 오지 않는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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