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독일 한스-뵈클러재단 전 경제사회연구소장이 25일 양대 노총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공동 주최한 노동정책포럼에 참가해 독일 하르츠 개혁과 그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노총

최근 독일 노동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유럽 국가들이 12%대의 높은 실업률에 시달릴 때 독일은 4~6%대의 안정적인 고용상황을 유지했다. 2009년 이후 독일 고용률은 최대 73%를 기록하는 등 7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로존 통합 이후 성장 속도가 가팔라진 독일 경제상황 혹은 하르츠법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의 효과에서 답을 찾곤 했다. 박근혜 정부가 최근 하르츠 개혁을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개선 모범 사례로 언급했다.

하지만 하르츠 개혁 이면에는 늘어난 저임금·단시간 노동이 자리하고 있다.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독일 한스-뵈클러재단 전 경제사회연구소장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양대 노총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이 공동 주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노동정책포럼에 참가해 “독일 정부는 올해 1월 처음 최저임금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하르츠 개혁에 의해 기간제한이 폐지됐던 파견노동 사용기한을 18개월로 제한하는 규제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독일 노동시장 전문가로 유명한 경제학 박사다.

“독일 여성고용률 증가, 이면에는 여성빈곤 심화”

2002년만 해도 28만7천600명에 불과했던 독일 파견노동자는 2003년 하르츠법이 제정된 이후 급속하게 증가해 2013년에는 81만4천600명으로 늘었다. 10여년 만에 규모가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노동자 대비 파견노동자 비율 역시 같은 기간 0.8%에서 2.2%로 상승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하르츠법이 노동자 파견확대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미니잡 종사자는 하르츠법 시행 직후인 2004년 전체 노동자 대비 비중이 5.5%에 달할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2013년 기준으로는 7.4%까지 증가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독일이 미니잡을 도입한 배경에는 잠재적 노동인력인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자는 뜻도 있었다”며 “최근 독일 여성고용률이 70%에 달하고 있는데, 미니잡이 어느 정도 여성고용 확대에 기여한 효과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그는 “독일 여성노동자 대부분이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니잡에 종사하는 여성이 늘면서 근로빈곤(Working Poor) 현상이 심화했고 일할 때 낮은 임금을 받다 보니 나이 들어 받는 연금도 적어 노년빈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독일 여성은 백만장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노년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비유했다.

파견노동·미니잡 같은 비전형 노동자 증가는 불안정·저임금 노동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저소득계층을 구조화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실업자가 비전형 노동자로 일하다 다시 실업자가 되고 이를 반복하는 회전문 효과가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하르츠법 효과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불안정성을 높였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고용안정성 확대해

그렇다면 4~6%의 실업률, 70% 이상의 고용률을 자랑하는 독일 노동시장은 어떻게 형성될 것일까. 그는 노동시간 단축·조정 정책(노동시간 유연화)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노동시간계좌제(한국의 노동시간저축휴가제)와 노사 합의에 따른 노동시간변화제(한국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들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독일 노사는 평소에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경제 위기 때는 정리해고 같은 집단해고를 방지하는 고용안정 대책으로 노동시간계좌제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며 “독일 금속 노사는 산별협약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정했지만 작업장평의회 합의를 전제로 30~40시간 이내에서 유동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후에도 이러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통해 독일은 해고를 막고 고용률 70%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독일의 안정적인 노동시장은 하르츠 개혁이 아닌 노동시간 단축과 조정 정책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독일의 노동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92년 1천550시간대에서 2013년 1천390시간대로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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