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섭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1. 사건의 경과

원고들은 비료 생산 공장인 남해화학의 복합비료 생산공정에서 근무했다. 수행한 업무는 복비공장의 각 층에 있는 각종 기기와 시설, 즉 컨베이어·펌프·엘리베이터·팬 쿨러 등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업무였다. 해당 공장에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 노동자들도 존재했다. 원고들은 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원청인 남해화학을 상대로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는데, 소송을 제기한 직후 남해화학이 자료 유출 등의 이유로 공장출입을 막았고 사실상 해고됐다. 1심·2심·대법원은 모두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파견 관계라고 판단했고 옛 파견법 제6조제3항에 따라 2년이 경과한 시점에 직접고용이 간주된다고 판단했다.

2.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건, KTX 승무원 사건에서와 같이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에 대해 이전보다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설시하고 있다.

즉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3. 이 사건 판결의 검토
먼저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약의 형식이나 명칭이 아니라,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실질적 판단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판단시 징표가 될 수 있는 여러 사항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결국 각 사건에서 이러한 징표들을 살펴보고 법관이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라는 것을 보면 대법원이 위에서 열거하고 있는 기준이 아닌 징표들이라고 하더라도 불법파견 판단의 징표가 될 수 있다.

먼저 업무상의 지시는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 지시, 또 구체적 지시가 아닌 상당한 지시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파견 판단시 참조되는 업무상 지시의 내용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물론 도급으로 위장1)하기 위해 현장대리인(통상 하청업체 소속의 반장 등 관리자)을 두더라도 현장대리인의 지시내용이 원청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라면, 예를 들어 원청의 지시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러한 지시는 원청의 지시로 보고 있음은 현대자동차 사건에서 대법원이 명확히 한 바 있다.

원청의 조직에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는 조직체계, 지시의 방법, 원청의 직원으로 취급 등 다양한 사실에 의해 판단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업 편입의 징표로 예시한 원청 노동자와의 공동작업이 혼재작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혼재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면 지시가 분리되기 어려우므로 파견의 유리한 징표가 된다. 그러나 혼재의 의미는 단지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느냐 여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 주고받기’를 생각해 보면 3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주고받는 것과 50미터·1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은 다르지 않다. 작업 자체가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연결돼 있다면 그것은 혼재작업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나아가 혼재는 근로자파견 판단의 유리한 징표일 뿐, 혼재작업이 아니라고 해서 근로자파견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한 부서 전체가 도급화된 경우라도 그 운영방식이 도급화 이전 운영방식과 달라질 것이 없다면 그것은 간접적이고 상당한 지시에 의해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므로 파견이 될 수 있다.

법원은 도급이라면 투입 근로자의 선발, 근로자의 수(인원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을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설시한다. 도급은 일의 완성에 대해 계약을 하는 것이지,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 투입될 도급계약에서 근로자의 수가 고려된다면 그것이 인력공급이지 도급이 아니다. 교육훈련도 하청이 일을 완성하기 위한 자신의 전문적 기술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실시해야지, 그것을 원청에 의존하는 구조라면 그것은 바로 하청업체가 인력공급업체임을 보여 주는 징표가 될 수 있다. 하청업체가 전문성·기술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것이 단지 노동자의 자격증과 숙련에 따라 그 노동자에게 있는 전문성·기술성이 아니라, 하청업체 차원에서 전문성·기술성을 가지고 교육 및 훈련을 실시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작업과 휴게시간 역시 원청이 관여한다면 그것은 도급이 아니라 인력 공급에 불과하므로 파견의 징표가 된다.

도급계약은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목적이 확정돼야 한다. 일을 완성하는 시기가 정해져야 하며 도급대상인 일이 특정돼야 한다. 포괄적이어서 원청의 지시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인력공급의 의심을 받게 된다. 원청의 업무까지 수행해 왔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하청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원청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도 판단기준으로 설시하고 있다. 업무가 구별되고 전문성·기술성이 있다면 도급으로 판단받을 수 있는 유리한 징표이나, 그렇다고 파견이 바로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도급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업조직과 설비·자본투입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즉 사업경영상 독립성이 있어야 하는데 설비 등을 원청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는 도급이 아니라 인력을 단순히 공급하는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3개의 사건에서 대법원은 처음으로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에 대해 일반적인 판단징표를 열거하고 있다. 남해화학 사건 원심 판결을 보면 하청업체는 하청업체 노조와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했다. 채용공고 등 독자적인 채용은 물론 직접 임금을 지급하고 세금 및 4대 보험도 하청업체에서 처리하고 사업자등록·사업소득세 납부 등 독자적인 기업활동을 한 것으로 나온다. 즉 이러한 사실들은 더 이상 파견이 아니라는 징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파견법상 파견업체도 위와 같은 사정들은 독자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은 사실까지도 원청이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그것은 묵시적 근로관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파견에 유리한 징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그래서 ‘편면적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른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원하청 공동직업훈련, 각종 후생복리비용의 제공,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원청의 직접적 관여 등을 파견 판단 징표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위 사건에서 대법원이 밝힌 판단기준을 명백히 위배하는 것으로 사내하도급을 합법화시켜 줘 재벌들의 1순위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각주

1) 의도한 위장이든, 의도하지 않은 위장이든 실질이 근로자파견이라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도급으로 위장된 관계임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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