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실업자. 오늘 이 나라에서 청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그래서였던가. 대통령까지 나서서 모조리 중동에 가서 대한민국에 청년들이 텅텅 비게 만들어 보자고, 기업이고 정부고 한마음으로 노력해서 제2의 중동붐을 이룰 수 있도록 하자고, 지난 19일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말씀하셨다는 뉴스다. 실시간 검색순위의 상단을 차지했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까지 했을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의도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텅텅 비게 된다면 그것은 이 나라가 청년이 살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 것이니 그런 나라는 희망이 없다. 아무리 청년을 위해서라지만 말이다. 제 나라에서 일자리가 없어서 중동이든 어디든 해외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다는 나라는 청년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청년을 사랑해야 하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나라를 말해야 한다. 그러니 말해 보자. 청년을 위해 청년을 위하는 나라를 말해 보자.

2.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해 온 지 오래다. 대통령의 말이고,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말이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해 온 말이다. 노동시장 개혁이니, 노동개혁이니 권력이 작정하고서 해 온 말이다. 오늘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서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그래야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권력의 말이라고 알고 있다. 개혁을 받아들여야 하는 노동자도, 개혁의 수혜자라는 청년도 알고 있다. 그리고 3월 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합의시한을 앞두고 대통령·부총리와 장관이 반복하고 있다.

어제는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는 노동전문가들의 말이 언론에 보도됐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보호가 기업의 청년고용 창출 능력을 반감시키고 있는 만큼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을 경제 환경의 변화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대타협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건비가 정규직쪽으로 쏠리는 연공형 제도의 폐해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성과와 직무 역량 중심의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도입해 생산성과 임금이 연계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동반하지 않은 정년연장은 청년 신규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300명 이상 기업의 경우 60세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을 7% 감소시키지만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에서는 청년고용이 24% 늘어난다"고 강조했단다. 한 언론매체의 기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격차는 청년실업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규 노동자의 고용이 심각한 경직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규 고용, 특히 청년 고용에 대한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기사를 쓴 뒤에 그 해결책으로 이 노동전문가들의 말을 적극 인용했다.

노동전문가의 말은 한마디로 ‘정규직 과보호론’이다. 오래된 이론이다. 노동시장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서 경기불황으로부터 경제회복이 어렵다는 경제학 이론이다. 케인즈주의에 맞선 시카고학파 신자유주의 경제학류의 오래된 이론이다. 경기가 불황 국면에 접어들기만 하면 노동자 앞에 내뱉는 말이다. 나라와 시대는 다르지만 자본과 권력, 그리고 그 편에 선 전문가가 다르지 않게 하는 말이다. 이들에겐 노동조합이 악이다. 임금 저하와 해고를 막는, 노동시장을 하방경직하게 하는 자유시장경제 질서의 암이다. 임금이든 고용이든 수요와 공급의 가위로 신축성 있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에겐 실업은 유연성이 답이다. 사용자가 고용할 수 있을 만큼 임금을 낮추면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고임금 노동자를 해고해서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겐 노동의 하방경직성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노사정이 대타협하면 바람직한 것이다. 하방경직성을 해소할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신념대로 저항하는 노동조합을 진압해서라도 노동자권리를 하방시켜야 한다. 그들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민주노총의 4월 총파업은 진압돼야 한다. 위에서 노동전문가들이 “정규 근로자에 대한 과보호가 기업의 청년고용 창출 능력을 반감시키고 있다”며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을 경제 환경 변화에 맞게 개선해야” 하고, 임금제도를 연공형 제도에서 ‘성과와 직무 역량 중심’의 성과주의 임금제도로 변경해야 하며, 정년연장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서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정규직의 임금을 낮추고 해고를 자유롭게 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정규직의 권리를 저하시키면, 그만큼 더 사용자는 노동자를 사용해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이들의 말은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이 노동자 전체에 지급할 임금총액, 노동자 권리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노동자들이 그걸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좀 더 키울 수 있는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낡은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환경 변화에 맞게 개선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청년을 위해서라고 그들은 말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다름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고용보호 되지 않는 나라, 근속에 따라 임금이 상승되지 않고 사용자가 성과주의로 임금을 지급하는 나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서 정년연장이 되는 나라가 청년을 위한 나라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사용자 자본의 몫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청년을 위해서라도 노동의 몫으로 될 수 없는 거라고 그들은 전제하고 있다. 그 사용자 자본의 몫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더는 기업활동이 이뤄질 수 없다고 그들은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청년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몫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동자를 사용해서 사업을 하는 자, 사용자 자본이 부담해야 할 노동자 임금을 다른 노동자의 임금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그렇게 태연하게 언론에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럴까. 과연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럴까.

정규 노동자가 과보호되고 있다고 그들이 말하고 있는 그 정규직은 대기업의 정규직을 말한다. 임금이 낮고 고용보호가 되지 않는 중소기업의 정규직을 말하지는 않는다. 현대기아차·삼성·LG·SK 등 대기업 정규직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 대기업은 해마다 엄청난 순이익을 실현해 왔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10대 그룹 대기업들이 흑자로 쌓아 둔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을 넘어섰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국내 10대그룹의 96개 상장계열사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사내유보금이 503조9천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7조6천300억원(8.1%) 증가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이들 대기업은 정규직의 임금을 낮춰야 청년노동자를 고용할 수가 있는 경영 상태에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을 받고 해고가 어렵다는 정규직을 고용하고서라도 얼마든지 사업할 수 있는 경영상태다. 사용자 자본의 몫이 정해져 있어서 그것을 노동의 몫으로 하면 더는 사용자 자본이 사업을 계속하지 않을 수준이 결코 아닌 것이다. 청년노동자를 고용할 자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대기업에겐 청년노동자를 고용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런 대기업, 사용자 자본을 두고서 정규직의 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정규직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정년연장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서 해야 한다고 편들 일이 아니다. 사내유보금을 사용해서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청년을 위해 노동전문가가 할 말이다.

4.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1.1%로 전월(9.2%)에 비해 1.9%포인트 올랐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7월 11.5% 이후 약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언론은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층 고용률 40% 수준은 회원국 평균 50%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고, OECD 회원국 중 청년고용률이 40%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만큼 이 나라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청년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청년을 위해서 말해야 한다. 실업이 청년의 운명이 아니라고 이 나라는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일자리는 사업(장)을 설치해서 운영하는 주체가 결정한다. 그 주체의 경제학상 이름은 자본이고(국가 공적 부문에선 국가 공공기관), 노동법상 이름은 사용자·사업주다. 그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자이니 그들을 압박할 방안을 찾아서 말해야 한다. 그것을 말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다른 노동자를 위해서 몫을 내놓으라고 말한다면 이에 대한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조합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총파업이든 무엇이든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행동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다. ‘청년을 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청년을 고용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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