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에 대해 회사는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노동자들에게 약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현대자동차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이유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21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울산지법은 노조원 122명에게 7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노동자 파업에 민사면책을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손해배상·가압류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투쟁도 그랬다. 회사는 노동조합이 조합비를 400년 동안 모아도 갚을 수 없는 158억원이라는 돈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했다. 이에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간부였던 최강서씨가 2012년 12월21일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사는 죽음으로 항거했다. 법원은 한진중공업지회에 59억원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1990년대 이후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새로운 형태의 노동탄압으로 대두된 이후 손해배상 규모와 그로 인한 폐해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조합비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과 개인재산, 심지어 신원보증인 재산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동원되고 있다.

헌법이 노동 3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노조법에서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단지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라는 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 이유는 현행법과 판례의 해석으로 인해 민사면책의 대상이 되는 쟁의행위를 극도로 제한하고, 대부분의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낙인찍기 때문이다. 합법파업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정상적인 파업권 행사마저 행정기관과 법원의 유권해석을 통해 대부분 불법파업이 돼 버리는 것이다. 사용자는 형사처벌·징계·손해배상 같은 각종 법적인 탄압수단을 동원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노동조합의 쟁의권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노동자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막대한 금액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소제기 자체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결국은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노동현실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참혹하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사용자들은 어김없이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으로 응수하고, 법원은 손해발생 여부나 인과관계에 대한 엄격한 심사 없이 대체로 사용자들의 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손배 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은 법과 제도로 인한 사회적인 타살이다.

법은 상식이라고 했다. 노동자와 사용자 관계는 일회적이지 않고 쟁의행위가 끝난 이후에도 노동력 제공과 임금지급 관계가 지속된다. 노동자 파업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는 사용자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회사가 엄청난 이익을 얻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쟁의행위 기간에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됐다 하더라도 그 이후 지연된 생산물량을 보전하는 것도 역시 노동자들이다. 그러할진대 특수한 노사관계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이뤄진 쟁의행위를 이유로 노동자가 평생을 벌어도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 굴레를 지우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내몰고 손배 가압류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은 노사갈등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아니다. 손해배상·가압류가 가지고 오는 인간성 파괴와 노동조합의 말살, 노동자들의 죽음은 중단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쟁의행위 정당성에 대한 판례법리 변경과 더불어 노조법을 개정해 노동자 파업에 대한 민사면책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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