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사정이 3월 말을 시한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선 협상에 나선 가운데 3대 노동현안인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부터 합의를 도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16일 게재된 매일노동뉴스 기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권력자들은 이달 말까지 노사정 합의 시한을 정해 놓고 압박하면서 노동시장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은 거였다. 권력만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종용해 온 것은 아니었다.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2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면서 3개 의제에 관한 합의를 2015년 3월 말까지 이끌어 내기로 했다. 당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기본방향에 합의하고 ‘5대 의제 및 14개 세부과제’를 도출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문제’, ‘사회안전망 정비’ 의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노사정위는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우선과제를 2015년 3월까지 논의하기로 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사정 합의는 정부 권력자도, 노사정 대표자들이 참여하는 노사정위 스스로도 2015년 3월 말이라고 마감일을 정해 놓고서 합의를 위해 종종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감일을 앞두고서 3대 현안인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부터 합의를 도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는 뉴스다. 그래서 나는 3대 현안을 도대체 어떻게 합의하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 나라에서 노사정 합의는 무엇으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봤다.

2. 노사정위에서 3대 현안은 전문가 1그룹에서 논의해 왔다. 지난 1월19일부터 9차례 회의 및 워크숍을 개최해 논의한 결과가 2월27일 제11차 노동시장특위에 보고됐다.
먼저 재직자조건. 일정근무일수 충족기준에 관계없이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노동계안에 대해 정부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 등 판례의 판단기준을 법률로 규정하고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 의견으로 “고정성 요건과 관련해 재직자요건 등을 삭제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우선 재직자 요건 등을 상여금 지급 기준으로 둔 다양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고, 현실적으로는 통상임금 범위를 대폭 확대시키게 돼 할증률 조정 등 이익균형을 위한 추가적 분쟁 및 갈등을 야기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를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별 차원의 협약 등 노사 대등한 지위의 자치규범 미비를 이유로 한 노사합의에 의한 통상임금 범위 결정권 인정에 반대하는 노동계 입장에 대해 전문가의견으로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해서 노사의 자율적 이익조정을 배제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대표(과반수노조 포함)에 의한 강행적 기준의 적용을 회피할 수 있는 예외를 다수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 노사합의로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문제에 있어서 정부안은 법원 판례 수준이거나 그보다 못한 수준으로 입법하겠다는 것이고 공익전문가의 의견은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 범위에 포함해서 노동자 임금 권리를 확장하는 것으로 향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사합의로 그 범위를 축소해서 정하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입법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정부안이든 전문가의견이든 그들이 내세우는 공익에 노동자권리는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시간 문제는 법정근로시간에 휴일근로가 포함되느냐에 관한 쟁점을 제외하고서는 논의될 수 없다. 노사정위에서도 휴일근로를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에 포함시키는 데 대해 논의해 왔다. 휴일근로를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에 포함시켜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하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해야 한다는 노동계 입장에 대해 정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되 추가연장근로시간을 예외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공익전문가 의견은 “단계적으로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되, 추가 연장근로시간을 예외적으로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휴일근로에 대해 연장근로로서 중복할증을 인정해야 한다는 노동계 입장에 대해 정부는 휴일근로시간 중 8시간 초과근로시간에 대해서만 중복할증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하여 공익전문가 의견은 “휴일 연장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에 비례해 할증률을 점증시키는 방안, 근로시간단축 추세와 더불어 일정 기간 할증률을 차등화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노사 간 분배 및 비용 문제이므로 원칙론적 접근보다는 현실 문제에 대한 노사 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도대체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개념조차 없다. 법이 정한 최장의 노동시간이라는 근로기준법 제50조의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몰이해가 지금 이 나라에 이르러서 정점을 찍고 있다. 노동법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할 전문가도, 그 법을 노동행정에서 집행할 정부도, 심지어 노동자를 대변해서 노동자권리를 말해야 할 노동계조차도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한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무지는 다를 게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나라에서 법정근로시간은 1주간에 40시간인 것이고(근로기준법 제50조), 이에 대해서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53조). 이 제50조 또는 제53조를 위반해서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대하여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근로기준법 제110조제1호).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시키는 개정을 하지 않아도, ‘단계적으로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도록 할 것도 없이 휴일근로는 1주간에 하는 근로이고 당사자 간 합의로 할 수 있는 1주간 52시간에 포함되는 근로이며 1주간 40시간으로 정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하는 연장근로이므로 휴일근로수당 외에 별도로 연장근로수당을 할증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것이 현행 근로기준법이다.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법에 따라 보장된 노동자권리에 관해 무지한 거다. 아니면 법이 보장한 근로시간에 관한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려는 것이 분명하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에 의해서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2016년부터, 그 미만 사업장에서는 2017년부터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하고(제19조제1항),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간주된다(동조 제2항). 그런데 제19조제1항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에서는 노사 간에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제19조의2제1항). 이와 관련해 노사정위에서 경영계의 임금피크제에 관한 법제화 주장에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는 데 대해 정부는 취업규칙·단체협약 개정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고, 공익전문가 의견은 “임금피크제 도입이 고용친화적인 방향으로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사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임금체계 개편에 관해 경영계가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 가치와 성과를 반영하는 직무·성과 임금체계로 개편”해서 “공정한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정부도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를 직무·능력·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하고, 공익전문가 의견은 “과도한 연공위주 결정에서 탈피해 직무·숙련·성과 등을 기준으로 근로자가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안이든 공익전문가 의견이든 임금피크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하고, 직무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져야 하는 방안을 말하고 있는바, 그것이 나아가고 있는 기본적인 방향에 있어서는 경영계 입장과 차이가 없다. 도대체가 노동자권리는 없다. 노동자를 위한 정부도, 전문가도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공익에서 노동자는 없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대로 노사정위에서 합의한다면 합의는 노동자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경제든, 기업부담이든, 무엇이든 노동자권리를 대신한 개념이 공익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배신하고 노사정의 합의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3. 한국노총·경총·대한상의·부총리·고용노동부 장관·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노사정위 공익위원과 상임위원 그리고 위원장 등 이 나라 노사정의 대표라는 그들은 지난해 12월23일 “지난 30년간의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계승·발전시키면서, 향후 3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 논의한 결과, 현재와 미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전환과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며,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5대 의제 및 14개 세부과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고, “노사정은 더 많고 더 좋은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 및 사회통합을 목표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하되 그 원칙과 방향”에 관해 합의했다. 이 합의가 노동자에게 배신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노사정위에서 할 구체적인 합의의 결과로, 그리고 그 결과로 추진될 입법과 정부의 법집행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노사정 합의는 노동자에겐 배신이기 일쑤였다. 부디 이번에는 합의가 배신이 아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런데 2015년 3월17일 현재까지는 아니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