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경미 공인노무사(한맥공인노무사사무소)

A사가 직원 37명이 작성한 탄원서를 노동위원회에 제출했다. 직원들은 탄원서에서 징계받은 근로자가 자기들한테 정년 70세나 휴가비 제공 같은 현실성 없는 공약으로 선동하기만 했지 정작 이뤄진 것은 없다고 했다. 그 근로자가 시도 때도 없이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회사 분위기를 망친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근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두렵고 불편하니 회사에서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조치를 바란다고 썼다. A4 용지에 컴퓨터 워드로 작성한 똑같은 내용에 37명은 이름만 썼다.

어리석다. 회사는 탄원서가 자신들에게 유리할 줄 알았나 보다. 직원들이 우르르 징계받은 사람을 비난하면 그것이 회사에게 도움이 될 줄 아는가 보다.

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은 심문회의에서 회사측에 어떤 경로로 직원들이 탄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는지 물었고, 직원들이 탄원서를 작성한 시점이 언제인지 물었다. 당연히 징계를 받은 근로자가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제기한 뒤 작성된 탄원서였다. 공익위원은 탄원서 내용이 하나같이 똑같다는 점도 지적했다.

탄원서를 받아 본 징계 근로자는 당연히 분개했다. 37장의 탄원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름 석 자를 새기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결과는 어떤가. 징계 근로자가 조화로운 회사 분위기를 해쳤다지만 정작 그런 탄원서를 노동위에 제출한 회사가 오히려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징계를 하긴 했는데 객관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회사 스스로 노동위에 실토한 셈이 됐다. 탄원서에 기대는 바람에 직원들 사이에 애꿎은 갈등만 불거진 것이다. 언제쯤이면 노동위에 이런 탄원서를 내는 어리석은 회사가 사라질까.

해고자를 상담할 때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절차를 진행하다가 회사에서 복직하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말을 빠뜨리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경우가 발생했을 때 근로자들이 대뜸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복직하지 않으면요? 그동안의 임금은요? 임금을 안 주면요? 노동위에 걸어 놓은 사건은 어떻게 돼요?”

답변은 같다. “회사에서는 무단결근을 했다고 다시 이것을 빌미로 해고할 수 있고, 임금을 안 주면 법원에 소송해야 하고, 노동위에서는 복직됐으니 구제실익이 없다며 각하판정을 내린다.”

그러면 백이면 백 “그런 법이 어디 있냐”, “법이 뭐 그러냐”, “구제신청 하나 마나네”라고 말한다.

구제절차를 진행하는 와중에 계약기간이 만료돼 노동위가 각하 판정을 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경우다. 왜냐하면 복직을 시키는 속내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까짓것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만 참으면 되는데 굳이 계약기간 도중에 해고를 해서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약았다. 그래서 계약기간 만료로 각하 판정을 받는 경우보다 오히려 복직시키고 문제를 덮는 경우가 훨씬 빈번하다. 미리 포기하고 취하해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회사는 일단 근로자를 복직만 시키면 된다는 것을 안다. 한 번 해고당한 근로자가 다시 그 회사에 출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근로기준법상 처벌도 받지 않고 근로자가 임금을 달라고 소송을 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복직된 마당이니 금전보상명령 신청을 해도 각하 판정을 내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결국 근로자는 포기한다. 복직명령을 받았으나 출근하지 않거나, 출근해도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런 회사가 약아빠졌다고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

그래서 차선책으로나마 노동위의 구제명령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복직명령에 부수하는 임금지급 명령만이 아니라 독립적인 임금지급 명령도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회사가 근로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으로 인한 불이익을 일시적으로 면하기 위해 겉으로만 복직시키는 척했는지 엄격히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노동위원회 제도가 아무 쓸모없다”고 푸념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각하 판정이 다가 아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