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우리 사회 청년들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가 ‘비관’을 넘어 ‘달관’에 이르기 시작했다는 신종 세대담론의 등장에 대해 어느 청년이 꺼냈을 법한 말이다. 청년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외부 시선에 의해 발명되거나 수입된 세대담론이 이제는 자족을 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당사자들은 짜증 섞인 피로감을 토해 낼 수밖에 없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한 달에 100만원이면 행복하기에 정말 충분할까. 적게 벌어 적게 쓰자. 더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양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고도성장의 황금기를 마치고 저성장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순간에 참으로 어울리는 슬로건이다. 새마을운동 시절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2015년 "적게 벌어 적게 쓰자"로의 극적인 장면 전환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언제 한번 청년들에게 제대로 물어본 적이나 있었던가. 사회는 88만원세대부터 삼포세대·캥거루세대·NG(No Graduation)세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조어로 청년의 존재를 규정하기 바쁘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며 조언하기 일쑤였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청년이 스스로 질문에 직면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없이 달리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사회적 삶에 대해 돌아볼 시간 따위는 가져 본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청년은 끊임없이 가로세로 재단되며 ‘○○세대’라는 이름표만 바꿔 달고 있다. 이런 현상이 특징적인 것은 유독 청년들에 대해서 그런 시도가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물론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처럼 특정한 세대가 수행한 사회적 과업을 두고 명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역사의 결과에 의한 규정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정도 생각하고 보니, 주로 기성세대 시각에서 신세대 젊은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인가 싶기도 하다.

세대담론이란 때때로 사회과학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청년을 주체로 앞세워 동원하거나 대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에 의해 정치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간의 큰 선거를 앞두고 젊은 표심들을 조직하기 위해 정당들이 앞다퉈 행해 온 이벤트들을 보자. 젊은 유권자들이 호들갑스럽게 변화의 동력으로 호명됐지만, 나는 그것이 이미지 마케팅에 불과했다고 본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젊다는 사실이 정치적 성향과 어떤 인과관계를 맺을 리도 없다.

아무튼 청년을 말하는 언어들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리고 정작 청년 세대는 자기 서사 안에서 양분을 얻으며 발전하지 못하고 세대 바깥에서 제기되고 유행처럼 소비된 후 소멸한다.

달관세대 논란 역시 그러한 맥락을 비켜 갈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의 논란은 우리에게 세대담론을 다시 생각할 계기까지 제공하고 있다. 성급한 담론 수입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고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잘 준비된 표현으로서 ‘달관(達觀)’은 근래 일본 청년들의 가치관을 담은 일본어 ‘사토리(さとり)’에 대해 기가 막히게 ‘적절한 번역어’가 아닐 수 없다. 수입상이 어떤 기획을 가지고 물건을 들여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청년의 달관을 원하는가.

하지만 결론적으로 달관세대는 없다. 설령 소수가 속세를 벗어난 삶의 방식을 추구한들, 그러한 ‘세대’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청년들의 삶을 특정한 의도에 따라 재현함으로써 현상의 구조적 원인을 가리는 착시효과를 낳을 뿐이다. 조작의 효과는 무엇인가. 이른바 달관세대 주창자들은 얇은 지갑을 대신할 두터운 삶의 양식이 마련되지 않은 사회적 조건에서 단순히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안분지족의 삶을 청년들에게 ‘또다시’ 강요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게 진정 이름이 붙는 순간은, 지금 청년들이 직면한 사회적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집단적 노력의 결과에 의해서만 다가올 것이다. 우리 세대의 이름은 그런 방식으로 붙여져야 한다. 청년을 두고 달관이든 무엇이든 붙여 볼 자유까지 탓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사실인 양 세상에 내놓지는 말아야 한다. 기획보도야 언론사 마음이지만, 청년의 삶까지 기획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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