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11일 LG유플러스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숙농성 투쟁이 174일, 파업 116일을 맞았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숙농성 투쟁 143일, 파업 113일째다. 서울중앙우체국 앞 고공농성은 35일이나 됐다. 지긋지긋하다. 또 비정규직 장기투쟁이다. 그저 준법 수준의 상식적인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 엄동설한 찬 바닥에서 한뎃잠을 자고, 굶고, 고공으로 올라가야 하는가.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생계고를 비롯한 온갖 고통과 피해·희생을 참고 견뎌야 하는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자신의 무기로 들기만 하면 장기투쟁으로 치닫기 일쑤인 비정규직 노사문제, 언제까지 이 지경으로 방치할 것인가.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다. 헌법 33조에서 정한 노동 3권에 따라 모든 사업장에서 2명 이상만 모이면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다. 1천900만 노동자들은 누구든 노동조합을 만들어 사용주에 맞서 쟁의권을 활용하며 교섭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쟁취해 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노동 3권이 부정되거나 위축되면 자본주의 사회는 곧장 지옥이 된다.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인권침해가 일상화된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인 임금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낮아지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갈 수 없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전제조건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왜 서울 도심 통신비정규 노동자들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을 찾아가지 않는가. 현 시기 가장 핵심적인 노동현안인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가 압축된 현장을 외면하고 무슨 대책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가슴 없는 대책은 문제를 꼬이게 할 뿐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당사자들과 격의 없는 소통과 교감을 나누지 않고는 약자의 요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얘기를 진심으로 듣는 것만으로도 종종 문제 해결의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힘 있는 자의 입장에서 손쉬운 대책을 면죄부 삼아 내는 것 외에 달리 취할 방도가 많지 않다.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판박이처럼 밟아 온 전철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투쟁 장기화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분신과 자결, 단식·고공농성 등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목숨을 거는 방식의 투쟁이 일상화되는 지경까지 와 있다. 부당한 현실에 맞서 당당하게 잘살아 보려고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택하면, 대부분 후회막급이 되거나 패가망신의 통로가 돼 왔다. 육두문자가 불쑥 튀어나오게 만드는 우리 노동현장의 현실이다. 노동자들을 피폐하게 하고, 극단적인 투쟁을 불러와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며, 애초 요구는 온데간데없이 투쟁기간에 생긴 민형사 및 손배 가압류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자리 잡아 소모적인 노사갈등이 극대화되는 장기투쟁을 사회적으로 용인해선 안 된다. 지나친 사회적 비용도 문제지만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피해와 희생이 너무 크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우선 노조를 와해하거나 무력화할 속셈으로 장기투쟁을 유도해 온 사용주들부터 인식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강경투쟁을 원하는 노동자들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노동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피해가 커지므로 그럴 이유가 없다. 오로지 칼자루를 쥔 사용자가 노조 탄압과 비정규직 문제 회피 수단으로 이를 악용해 온 것이 진실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사회적 책무가 큰 SK나 LG 같은 재벌 대기업조차 불법 다단계하도급 구조 아래 양산해 온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이렇게 장기투쟁으로 몰고 가는 건 중범죄다.

정부도 나서야 한다. 장기투쟁은 노동현장의 불신을 확산시키고 노사갈등을 상호 적대로 몰아갈 뿐이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다. 정부가 장기투쟁 요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장기투쟁을 유도하는 사용주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하거나 계도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장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관성처럼 굳어진 비정규직 장기투쟁 문제는 노사정이 합력해 매듭을 풀어야 할 사회적 해결 과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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