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대법원 2010다106436 판결

1. 주된 쟁점


현대차를 상대로 해서는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았고, 철도공사를 상대로 해서는 근로자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 2월26일 대법원은 이렇게 사내하청 노동자와 KTX 승무원의 청구를 달리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은 그 판결의 주문, 즉 결과만 다르게 선고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판결의 이유도 다르게 선고했다. 현대차 사건에서는 파견근로관계라고 인정해서 사내하청 노동자가 현대차 근로자라고 판시했고, 철도공사 사건에서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KTX 승무원은 철도공사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렇게 두 사건은 파견근로관계와 묵시적 근로관계로 승패가 갈렸다. 물론 현대차 사건에서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라고 1심부터 상고심까지 노동자들이 주장했으나, 1심부터 인정하지 않았고 대법원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철도공사 사건과는 달리 현대차 사건에서는 별개로 파견근로관계라고 주장했다.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는 주장은 원청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 간에 체결한 도급계약이 그 계약의 명칭 내지 형식과는 달리 실제로는 근로자파견계약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주된 쟁점이었다.

2. 파견과 판례 법리

파견법은 근로자파견을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제2조제1호). 이 파견법에서 정의한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면 도급계약으로 체결한 것이라도 사내하청근로는 파견근로다.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판례는 바로 이러한 파견법의 근로자파견 해당 여부를 판단 짓기 위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0년 7월22일 최병승 사건에서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는 파견근로라고 판결했다. 당시 ① 현대차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인 원고들은 현대차의 자동차 조립·생산 작업의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의장공정에 종사하고 ② 원고들은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들과 혼재 배치돼 현대차 소유의 생산관련 시설 및 부품, 소모품 등을 사용해 현대차가 미리 작성해 교부한 것으로 근로자들에게 부품의 식별방법과 작업방식 등을 지시하는 각종 작업지시서 등에 의해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사내협력업체의 고유 기술이나 자본 등이 업무에 투입된 바는 없고 ③ 현대차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을 가지고, 그 직영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원고들이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 방법·작업 순서 등을 결정하며, 현대차는 원고들을 직접 지휘하거나 또는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소속 현장관리인 등을 통해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했는데, 이는 원고들의 잘못된 업무수행이 발견돼 그 수정을 요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방식의 작업지시가 이뤄졌고,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이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이는 도급인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도급인 등에 의해 통제돼 있는 것에 불과하며 ④ 현대차는 원고들 및 그 직영근로자들에 대해 시업과 종업 시간의 결정, 휴게시간의 부여, 연장 및 야간근로 결정, 교대제 운영 여부, 작업속도 등을 결정하고 또 현대차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산재·휴직 등의 사유로 결원이 발생하는 경우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로 하여금 그 결원을 대체하게 하고 ⑤ 현대차는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를 통해 원고들을 포함한 이 사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근태상황·인원현황 등을 파악·관리했다는 원심법원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의한 사정을 들어 대법원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10.07.22 선고 2008두4367 판결).

이처럼 대법원은 파견근로의 판단기준에 관한 법리를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않고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파견근로관계라고 판시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에도 현대차 등에서 사내하청근로의 파견근로 해당성에 관한 논란이 계속됐다. 특히 이 대법원 판결에서 특별히 고려한 사정, 즉 컨베이어벨트에 따른 메인공정이 아닌 서브공정도 파견근로에 해당하는지, 원청 정규직과 혼재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만으로 별도로 분리된 공정이 파견근로에 해당하는지가 현대차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사건에서 다투어졌다. 그런데 이번 현대차 아산공장 사건은 최병승 사건과는 달리 메인라인 외에도 엔진공정 등 이른바 서브공정, 사내하청 근로자들만으로 분리된 공정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까지 청구한 사건이었다. 현대차는 이 점을 강조하며 최병승 외 1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의 기준이 그대로 아산공장 사건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다투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 지 4년3개월 만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지 9년2개월 만에 대법원은 아산공장 사건에서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고 지난 2월26일 마침내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15.2.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3. 판결 - 파견의 판단기준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고 한 뒤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최병승 사건에서 판시하지 않았던 파견근로의 판단기준에 관해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판시했다.

그리고 이런 파견근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대법원은 “피고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을 가지고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방법·작업순서·작업속도·작업장소·작업시간 등을 결정한 점, 피고는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를 직접 지휘하거나 사내협력업체 소속 현장관리인 등을 통해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했는데,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이 소속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이는 피고가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피고에 의해 통제된 것에 불과한 점,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피고 소속 근로자와 같은 조에 배치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점, 피고는 소속 근로자의 결원이 발생하는 경우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로 하여금 그 결원을 대체하게 하기도 한 점,피고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휴게시간 부여, 연장 및 야간근로, 교대제 운영 등을 결정하고 사내협력업체를 통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근태상황 등을 파악하는 등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를 실질적으로 관리해 온 점, 사내협력업체가 도급받은 업무 중 일부는 피고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동일해 명확히 구분되지 아니하는 점, 사내협력업체의 고유하고 특유한 업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피고의 필요에 따라 사내협력업체의 업무가 구체적으로 결정된 점,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담당 업무는 피고가 미리 작성해 교부한 각종 조립작업지시표 등에 의해 동일한 작업을 단순 반복하는 것으로서 사내협력업체의 전문적인 기술이나 근로자의 숙련도가 요구되지 않고 사내협력업체의 고유 기술이나 자본이 투입된 바 없는 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 김○○·심○○·김○○·오○○은 사내협력업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돼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은 위법이 없다고 판결했다. 최병승 사건에서 주되게 부각됐던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자동생산흐름에 의한 자동차 조립·생산 작업이라는 공정의 특성에 관해서는 판시하고 있지 않고, 이에 따라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들과 혼재해 배치돼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에서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해 구체적으로 판시함으로써 이러한 여러 사정은 해당 사업장에서 파견을 판단하는데 고려하는 ‘요소’에 불과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해 제3자의 지휘·명령 여부,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 여부 외에도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원고용주의 독자적인 결정 권한의 행사 여부나 계약 목적의 한정성 및 근로자 업무의 제3자 소속 근로자 업무와의 구별성, 업무의 전문성·기술성 여부, 그리고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원고용주의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의 존부 등의 요소까지 고려해서 실질적으로 파견근로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를 확대해 이러한 요소가 마치 파견 판단의 기준 내지 요건으로 파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파견법에서 정의한 대로 사용사업주가 아닌 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면 근로자파견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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