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화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LG유플러스의 홈서비스(인터넷·IPTV·전화·홈CCTV 등) 신규개통과 AS를 담당하는 현장기사들은 물론이고 사무실에서 고객 전화상담을 받거나 현장기사 일정을 배치하는 내근직원들은 모두 지금까지 LG유플러스 직원이 아닌 개별 하청업체의 직원으로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왔다.

업무 중 사고가 나면 모든 것을 본인이 알아서 감수해야 했고, 부상을 당해 일을 하지 못하면 수입은 전무했다. 온갖 이름의 급여차감과 인격모독 같은 회사측의 위법행위가 횡행했지만 불안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는 이들은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몇몇 기사들이 지난해 3월30일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를 설립했다. 노조 설립 이후에는 합법적인 파업도 전개했다. 그러자 LG유플러스 협력업체들은 노조 조합원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10월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업장 안에서 노사대등 원칙은 무너진 지 오래다. 노조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전면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내용은 매우 소박하다. 기본급과 식대·위험수당 등 각종 수당, 연장·휴일근로수당, 각종 페널티 차감 제한 같은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원청인 LG유플러스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 한 하청업체는 합의된 내용을 실행할 방법도 능력도 없다. 교섭의 성과가 지지부진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교섭을 벌이고, 원청인 LG유플러스와 그룹사에 면담을 요구하거나 집회를 개최하고, 일부 정치인의 힘을 빌려 보기도 했지만 수개월 동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조합원들은 결국 그룹사 수장인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이 회장 집 앞에서 농성을 벌이자 이들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다. 가처분 신청의 내용은 “집에서 30미터 이내에 2명 이상이 접근해서는 안 되며 직접 사용자가 아닌 LG와 LG유플러스, 구본무 회장을 언급한 구호를 외치지 못하게 해 달라. 이를 위반할 때마다 100만원씩 지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구본무 회장 본인은 가처분 신청 당사자로 나서지 않았다. 회장 집에서 가사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파견노동자 6명이 가처분 신청 당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형 로펌이 사건 대리인을 맡았고, 소요 비용은 원청인 LG측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을 대신해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사람들은 구본무 회장측으로부터 가사업무를 수임한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들이다. 구 회장 집에 파견돼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돈이 많이 있다면 집안 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치관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회장님의 소송업무마저 대행하며 회장님 심기까지 경호하고 있다.

노조 조합원들과 구 회장 집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들은 간접고용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라는 점에서 어쩌면 연대의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거나 우리는 이들이 가처분 채권자와 채무자로서 대면하게 된 고약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가처분이 인용되는 경우 그 실질적 수혜자는 따로 있을 것이다. 가처분의 채권자 지위마저 손쉽게 위탁할 수 있는 그 수혜자의 주택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해 보게 된다. 돈을 주는 사람에 의해 같은 처지에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사람들. 그 돈을 주는 사람을 상대로 수개월째 힘겹게 투쟁을 이어 가는 또 다른 사람들. 최소한의 도의나 절제를 잊은 비극적 현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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