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근무하는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가 무려 5만명에 달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3년에 한 번씩 ‘낙하산 인사 반대’를 외쳐야 하는 상황이에요. 사장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의 인사개입이 노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이때가 되면 권력에 줄을 대려는 인사들이 각지에서 모여듭니다. 조선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서 일신의 영달을 좇는 인사인 경우가 많죠.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최대 주주가 된 뒤 지난 15년간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광경입니다. 비상식적이고 소모적이에요.”

현시한(51·사진) 대우조선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노조는 3년 만에 또다시 "낙하산 인사 반대"를 외치는 중이다. 이달 말이면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데도 신임 대표이사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 위원장은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정부 눈치를 살피며 대표이사를 내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표이사로 내려보내기 위해 인선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올해 들어 두 차례 상경투쟁에 나섰다. 조속한 대표이사 선임과 인사개입 중단을 정부에 촉구하기 위해서다. <매일노동뉴스>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현 위원장을 만났다.

"대우조선 사장이 공기업 기관장인가"

대우조선해양 낙하산 인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0년 넘게 ‘주인 없는 회사’로 있으면서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통로로 활용돼 왔다. 2013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12년 사이 산업은행 출신 인사 11명이 대우조선 임원으로 재취업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에는 남상태 사장 연임로비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대표이사 자리를 놓고 청와대와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적절한 인선 시점을 놓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상황에 노조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사실 ‘주인 없는 회사’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회사 주인은 당연히 일터를 지켜 온 노동자들이죠. 불안정한 경영상황을 빗댄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지금처럼 3년에 한 번꼴로 불안이 가중되는 구조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여년간 노조는 바람직한 매각을 촉구하거나 아예 공기업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요. 어떤 방식이 최선인가를 떠나, 지금의 불안정한 구조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 위원장은 특히 “3년으로 돼 있는 대표이사 임기를 5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박 수주에서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조선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3년 임기는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이다. 선박을 수주한 경영진이 배 주인에게 선박을 인도하는 과정까지 책임지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대우조선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으로 5~6명의 내외부 인사가 거명되고 있다. 노조는 이 중 특정인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지난해 높은 수주실적을 낸 고재호 대표이사 유임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현 위원장은 “대우조선 사장을 뽑는 일과 공기업에 기관장을 보내는 일은 다르다”며 “대표이사 인선을 둘러싼 잡음을 끝내고, 경영진과 노동자들이 회사 발전 과정에서 힘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가시권에 들어온 고용불안

대우조선은 올해 수주목표를 지난해 수주실적보다 19억달러 줄어든 130억달러로 공시했다. 대우조선이 올해 1월 말 현재 석 달째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위 조선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다소 보수적인 목표설정이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국내 조선소들의 실적향상에 효자 역할을 했던 해양플랜트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요. 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실적목표가 다소 보수적으로 설정된 측면이 있죠.”

해양플랜트는 해저의 원유나 가스를 탐사·채굴하는 특수설비다. 운송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선박과 구분된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조선시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국내 조선사 해양플랜트 수주를 불황 타개의 돌파구로 활용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국제유가 하락이 본격화한 뒤 오일메이저 업체들이 해양플랜트 발주를 사실상 중단했다. 대우조선만 해도 지난해 11월 27억달러 규모의 원유생산설비를 수주한 것이 유일하다. 노조로서는 고용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에서 진행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조선업 고용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만 봐도 해양플랜트 발주 감소라는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보통 선박을 건조할 때보다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때 훨씬 많은 인력과 기술이 투입되는데요. 수주 감소가 계속되면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죠.”

지역경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당장 두 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상권의 활기가 예년만 못하다는 것이 현 위원장의 설명이다.

“지금 당장 고용한파가 밀려온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지만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위기의식은 확실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진 조선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중소 협력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죠. 일감 축소가 곧 해고로 이어지니까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정부 정책

조선산업 종사자들의 위기의식은 조선업종노조연대 출범으로 이어졌다. 노조연대에는 현대중공업노조와 대우조선노조·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등 조선업계 빅3 노조와 금속노조 조선분과 소속 현대삼호중공업지회·한진중공업지회·성동조선·STX조선지회·신아SB지회, 현대미포조선노조를 비롯한 9개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대우조선의 실적을 보면 매출과 영업이익은 늘었는데 순이익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선박 수주계약시 받는 선수금이 부채로 잡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배 주인에게 선박을 인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선수금을 부채로 인식하는 겁니다. 결국 수주를 하면 할수록 부채가 증가하는 꼴이 된다는 말입니다. 정부는 이 같은 재무제표를 근거로 조선소 신인도를 매기고, 금융당국은 이를 근거로 지원을 줄입니다. 연말이 되면 기업 신인도를 고려해 수주를 하지 말자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정부 정책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산업에서는 숙련공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직영사원이 줄고 그 자리를 협력업체 소속 비숙련공이 메우고 있어요. 이런 구조에서 중대재해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죠.”

대우조선노조를 포함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민주노총 4월 총파업과 연동한 투쟁계획을 모색 중이다. 정부를 상대로 사회적 대화도 요구할 방침이다.

"조선산업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산업안전 문제와 고용 문제입니다. 개별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노조연대가 사회적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현 위원장은 "정부 정책은 고용과 안전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한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공동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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