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한동안 회자했던 영화 <카트>에서 관리직 사원들이 여성 계산원들을 불렀던 호칭은 ‘여사님’이었다. 보통 돈 많은 상류층 여성을 지칭하는 말인 ‘여사님’은 계산원들의 처지와 맞지 않게 역설적이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노사정 대표단은 지난 4일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서울 잠실에 있는 한 대형마트를 방문했다.

월급 125만원의 ‘행복사원’

대형 마트를 방문하기 전 노사정위는 사전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노사협의로 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이뤄 내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한 사업장이라고 홍보했다. 또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반영하고 연봉제를 도입한 사례라고 했다. 무척 합리적이라서, 다른 유통업체들도 이 사례를 본받아야 하는 것처럼.

어찌 됐든 노사정 대표단은 여느 현장방문이 그렇듯이 회사가 안내하는 경로를 따라 마트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현장 노동자들과 대화도 했다.

그러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났다. 이 마트에서는 계산원들을 행복사원이라 불렀다.

행복사원? 갑자기 영화 <카트>가 생각났다.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묘한 감정, 어감이 그대로 떠올랐다.

이 행복사원을 통해 들은 바로는 그는 하루 8시간 일하고 주 5일 근무를 한다. 월평균 26일 정도를 일하는 셈이다. 시급은 6천원, 주휴수당을 받는다고 치면 대충 월 125만원 정도의 월급을 손에 쥔다. 물론 이는 추론일 뿐, 정확한 액수는 아니다. 그는 40대 중반은 넘어 보였다.

아무리 행복은 주관적 가치라 해도 만약 40대 후반쯤에 한 달에 15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간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 그것도 상류층이 많이 산다는 서울 잠실 부자동네에서….

현장순회 이후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만난 이들 중에는 정규직 사원도 있었고 조금 전에 계산대에서 만났던 분과 같은 행복사원도 있었다. 또 입점업체에서 파견 나온 사원과 특히 인터뷰 중 나를 울컥하게 한 비서직 파견 여성노동자도 있었다.

유난히 피부가 뽀얗고 앳된 얼굴이었지만 실제 그의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다. 그가 20대 초에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공공기관이었다. 파견직, 비정규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8년 동안 소속 파견업체가 네 번 바뀌었다. 파견업체가 바뀔 때마다 일하는 공공기관도 달라졌다.

지금은 노사정 대표단이 방문한 마트에서 임원 비서직으로 5번째 비정규직 삶을 살고 있다. 계약기간은 2년이라 했다.

노사정 대표단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기간제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녀는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그 방식은 희망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정규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물론 그의 신분은 기간제가 아닌 파견직이었다. 하지만 2년 후 직장이나 직종을 바꿔야 하는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전국적으로 1만5천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는 회사의 임원실 비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런 직무조차 파견직을 쓰고 있었다.

계약기간 확대? “저는 정규직이 되고 싶어요”

10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그. 그가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울컥했다. 또박또박 말도 참 예쁘게 하고 인상도 좋았다. 게다가 말귀까지 잘 알아듣던 그녀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시렸다.

그래도 그는 이곳이 공공기관보다 좋다고 했다.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조차 없이 2년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운이 좋으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이 더 아팠다.

과연 그녀는 2년 후 ‘운이 좋아’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서른두 살 나이에 또 다른 입사지원서를 쓰고 있을까. 동생 같은 그녀가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제발 ‘운이 좋기를’ 바라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