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인재경영컨설팅)

대상판결/ 서울고법 2013누50946 교섭단위분리재심결정취소

글을 시작하며

복수노조 환경하의 노사관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돼 왔다. 소수노조의 교섭권 침해라든지, 복수노조 신설로 인한 교섭권 다툼이라든지 하는 문제가 많이 발생한 것이다. 그에 비해 교섭단위 분리와 관련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크게 이슈화가 되거나 쟁점화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나 방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경우라도 교섭단위 분리는 상대적으로 현장에서 제대로 이해하거나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교섭단위 설정 문제는 단순한 교섭단위 분리를 넘어 교섭창구 단일화라고 하는 복수노조 시대 단체교섭 구조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에 속한다. 특히 산별노조나 지역노조 등 초기업단위 노조가 늘어 가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9조의3(교섭단위 결정) 제1항에서는 “제29조의2에 따라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해야 하는 단위(교섭단위)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기업(법인)을 기본 교섭단위로 설정하고 시작하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초기업단위 노조와 관련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됐다.

이번 판결은 이런 기업단위를 교섭단위로 설정한 경우 초기업노조의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물론 노조법 제29조의3(교섭단위 결정)의 제2항에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하여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 당사자의 양쪽 또는 어느 한 쪽의 신청을 받아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법문만 보면 교섭단위 분리가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식적이고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을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통상임금·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 등 수많은 노동법 판례에서 이를 확인했다.

교섭단위 분리신청 당사자 적격성 문제

이번 소송은 한국방송연기자노조가 한국방송공사(KBS)와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면서 시작한다. 서울지노위는 교섭단위 분리를 결정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KBS의 재심청구에 대해 “노조 소속 조합원 중 KBS 소속 근로자가 없으며 KBS와 소속 조합원들인 방송연기자들이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노조가 KBS에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초심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을 취소했다.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이런 중노위의 재심결정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지노위 판정을 번복한 중노위 재심결정이 위법하다는 판결이다. 결론적으로 교섭단위 분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노위가 재심판정을 내린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노위가 초심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을 번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조 소속 조합원 중 KBS 소속 근로자가 없고, 촬영을 하는 동안 KBS과 노조 소속 조합원들인 방송연기자들이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려워 노조가 KBS에게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1988년 초기업단위 노조로 설립신고를 마치고, 1992년부터 KBS를 포함한 공중파 방송 3사와 매년 출연료 합의서(임금협약)와 2년 단위로 단체협약서를 작성해 왔다. 2007년부터는 각 방송사별로 출연료 합의서와 단체협약서를 작성했다. 2000년 이후 6회에 걸쳐 서울지노위에 조정신청을 했으며, KBS가 출연료에서 노동조합비 공제를 하고 있는데도 하루아침에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즉 교섭단위 분리 여부만 결정해 달라고 신청했는데 중노위는 당사자 자격의 적격성을 문제 삼아 신청을 각하한 것이다. 기각과 각하는 법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기각은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요건에 맞지 않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각하는 아예 분리신청을 할 자격조차 없다는 의미다. 자격이 충분한 노조를 하루아침에 무자격 단체로 만든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조합원 중에 KBS 소속 근로자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노조법상의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다르다. 이번 판결은 그런 점을 명확하게 구분해 근기법상의 근로자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지만,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점은 인정했다.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노조를 인정한다는 것이 되고 이는 다시 교섭단위 분리신청 당사자 적격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교섭단위 분리의 판단기준이 되는 근로조건의 상이성, 교섭관행 등의 종합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연기자들이 방송사 직원들과 업무·근로조건 등이 확연하게 구분되고, 그동안 교섭관행도 독자적으로 형성돼 온 점을 고려할 때 교섭단위 분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이 판결도 마찬가지로 이런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확인해 교섭단위 분리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결국 당사자 적격성의 문제 때문에 당연한 결과를 얻기까지 수년의 시간을 낭비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단체교섭권은 노조에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권리이며 ‘단체교섭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듯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 노조가 교섭단위 분리를 통해 이제야 비로소 교섭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을 얻게 됐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교섭의 시기적인 측면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했다. 어쩌면 노사관계에서 이런 쟁송들이 교섭 자체를 지연시키고 정상적인 교섭을 방해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노조법인지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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