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중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나래)

지난해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여성은 자신의 아들이 자가용으로 출근하던 중 본인 중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처리가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해서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성은 공단의 처사를 도저히 수긍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 여성에게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차량이 회사 소유입니까? 아드님 소유입니까?” “아들 소유입니다.”

“자가차량을 출퇴근 외에 회사 업무용으로도 사용합니까?” “아닙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이 불가능합니까?” “출퇴근 거리가 멀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좀 불편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자가차량에 대해 회사에서 별도로 경비를 지급하나요?” “아니요.”

그 외 추가적인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면담이 시작된 지 5분여 만에 “자가차량 이용 중 출퇴근재해에 해당해 산재승인이 어렵다”는 공단 담당자와 똑같이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성에게 내 판단이 맞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을 보여 줬다.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의 경우 해당 교통수단이 사업주가 제공한 것이거나 이에 준하는 교통수단에 해당돼야 하고, 그 교통수단의 관리 및 이용권이 근로자측의 전속적 권한에 속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 경우는 법에 명시된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산재 처리가 힘들다”는 법조문까지 읊조렸다.

그렇게 상담이 끝나자 여성은 고개를 떨구며 사무실을 힘없이 걸어 나갔다. 나는 당시 헛된 기대감을 심어 주는 것보다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 상담자의 기본 덕목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산재처리 실무영역을 떠나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출퇴근이라는 행위 자체는 업무수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업무상재해로 보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일을 하기 위해 출퇴근을 하는 것이고, 출퇴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즉 출퇴근 행위 자체를 업무수행의 일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산재보험법에서 출퇴근 중 재해에 대한 산재 인정범위를 극히 일부 사례(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 등)로 한정하는 것은 결국 보험재정 문제 때문이지, 업무상 관련성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실제 공단에서 출퇴근 중 재해를 불승인하는 경우 법원 소송에서 처분이 취소되기도 한다.

일본과 독일·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근로자가 아닌 공무원들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 중 발생한 교통사고의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일반근로자와 비교해 볼 때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분명하다.

다행인 것은 좀 늦은 감이 있기는 하나, 고용노동부가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하반기부터 노사정 논의를 시작해 내년 상반기까지 출퇴근 중 재해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산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미 국회에는 '출퇴근 재해 산재 인정'을 골자로 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들어서만 3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물론 경제단체와 재계에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전에도 출퇴근 중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몇 차례 제기된 적은 있으나,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그냥 다른 이슈에 묻혀 기억에서 사라지곤 했다.

올해는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노동부)까지 나서 출퇴근 중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하니 꼭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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