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판결이 있었다. 지난 2월26일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판결에 웃고 울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는 대법원 판결에 웃고 울었다. 이날 대법원 대법정에서 판결 선고를 듣고 있었던 나는 웃었고, 원고들을 포함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감격하거나 안타까워하면서 울었다. 사건을 대리해 왔던 변호사로서 나는 이날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견근로자로서 현대차 근로자지위가 확인됐다는 데 안도하며 웃었다. 원고들 공정 모두가 파견근로라고 인정받았음에도 원고들 중 3명은 2년 초과해서 근무하지 않고서 해고됐다는 사실 때문에 2년 초과해서 근무해야만 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고용간주되는 옛 파견법이 적용돼서 이날 대법원으로부터 현대차 근로자라고 확인하는 판결을 받지 못했다. 그랬는데도 이런 사실을 잊은 채 나는 기뻐했다. 그랬기에 이런 사실을 떠올리며 비정규 노동자들은 기뻐하며 안타까워했다. 하나의 판결에 웃고 울었다.

2. 10년의 투쟁이었다. 2003년 6~7월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비정규직(사내하청)노조를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해고됐고, 2005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그러니 올해로 해고투쟁을 한 것이 12년이고, 불법파견 근로자지위 법정투쟁을 한 것이 10년이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의 소장을 제출한 때로부터 9년2개월 만에 이 나라 법원으로부터 현대차 근로자지위를 확인해 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은 비정규직 노조운동이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것이었다. 아산공장으로부터 시작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운동은 2005년 12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할 무렵에는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하던 간부·활동가·조합원에 대한 해고 등 징계·처벌 등으로 그 조직력과 투쟁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였다. 현대차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라며 비정규직 노조활동이 사내에서 행해지는 것을 막았고 당시 법원은 이러한 현대차의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을 쏟아 냈다. “사내하청 노사문제로 원청 현대차의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가처분결정을 선고했고, 사내하청업체 사용자를 상대하지 않고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한 교섭과 쟁의는 불법이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대차에서 사실상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받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결국 적극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던 노조간부 및 조합원들은 해고로 현대차에서 쫓겨났고, 사내하청업체 사용자를 상대로 해고가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하고 법원에 제소해 국가기관에 구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그 대답에 절망하지 않고서 해고자 중 일부가 현대차가 사용자라며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하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김기식·김준규·심수진·오지환 등 아산공장 해고자 7명이 전자의 소송을 제기했고, 최병승 등 울산공장 해고자 2명이 후자의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그리고 2007년 6월1일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인 원고들의 근로를 사용한 것은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에 해당하고 옛 파견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근무한 김준규 등 4인은 현대자동차(주)의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고 판단한 최초의 법원판결이었다. 이에 대해 피고와 나머지 원고들이 2007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 2010년 11월12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서울고법의 판결에선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판시했고, 이 판단기준에 관한 법리는 2014년 9월18일과 9월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비정규 노동자 1천여명의 근로자지위확인 등 청구사건들에서 그대로 인용해 판결했다. 그리고 위 현대차 파견근로자라며 현대차의 근로자지위를 확인하는 아산공장 해고자들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있은 뒤 3년 뒤인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울산공장 최병승이 파견근로자로 현대차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거라며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재심판정을 취소하라고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고 최초로 판결을 선고한 거였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자동차생산공장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었다. 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노조활동이 되살아났다. 집단적으로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참여했고, 2010년 하반기에 현대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폭발했다. 그리고서 4년이 흘러갔다. 마침내 대법원은 아산공장 해고자의 근로자지위 소송사건에 관해 원심판결이 타당하니 상고를 기각한다며 확정판결을 선고했다. 현대차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는 두 번째 대법원 판결이었다.

3.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최병승 외 1인 사건에서 이미 현대차 울산공장 의장공장의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대법원 판결에서 원심(서울고법) 판결을 파기하라고 판결을 했던 것이므로 서울고등법원은 종전 판결을 파기하고서 현대차가 부당해고한 것이라며 중노위는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서 현대차는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이렇게 되자 중노위는 파견근로가 아니라며 최병승에 대한 부당해고를 한 것이 아니라고 했던 재심판정을 취소하고서 현대차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하는 판정을 했다. 그런데 이 부당해고구재재심판정이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하라며 현대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금 서울행정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분명히 최병승에 대해 파견근로를 인정하고서 부당해고라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그럼에도 최병승이 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사건은 아직도 재판 중이고 이 나라 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현대차의 대응 태도로 보자면 최병승에 관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선고돼도 사용자 현대차는 서울고법에 항소할 것이고, 항소심판결이 선고돼도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2월26일이 오기 전에는 현대차에서 누구도 사내하청 노동자가 파견근로로 현대차 근로자라고 법원의 판결로 확정된 바 없다고 변명의 말을 해도 법적으로는 용납될 수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현대차는 ‘아직’을 말하며 법적으로 다투고 대내외적으로 변명의 말을 하며 파견법이 금지한 파견근로를 사용한 사용자로서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을 외면해 왔다. 그리고 현대차는 의장공장의 최병승과는 달리 자동차 컨베이어라인의 메인라인이 아닌 차체공장·엔진공장 등 서브라인 등에 종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파견근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이 집단소송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를 파견근로라고 판결하자 현대차는 사내하도급 자체를 아예 없애라는 것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서울고법에 항소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울산공장이 아닌 아산공장에 대해서도, 의장공장만이 아니라 차체공장·엔진공장 등까지 메인라인뿐만 아니라 서브라인까지도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원고 7명이 작업하던 현대자동차 자동차생산 공장의 공정 모두가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어서 적용대상의 범위가 대단히 넓다. 그리고 상고를 기각한다는 확정판결이었다. 따라서 이제 더는 현대차는 파견근로를 사용하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변명할 수가 없다. 누구도 파견근로라고 부당해고라는 노동위의 구제명령이, 현대차 근로자라고 판결이 확정된 사례가 없다며 법이 아직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고 변명하며 현대차는 그 책임을 더는 외면할 수가 됐다. 의장공장 등 메인라인이 아니라며, 원청 근로자의 공정과는 분리된 공정이라며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가 아니라는 주장이 더는 용납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최병승 사건을 행정소송을 통해서 지금까지 다투고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자지위 사건도 항소해서 다투면서 현대자동차는 아직 법원이 확정판결로 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단을 한 바 없다고 주장하며 정규 근로자로 전환시키지 않고 단지 사내하청 근로자 일부를 신규채용의 방식을 취하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하지만 마침내 지난달 26일의 대법원 판결로 이제 현대자동차는 파견법 위반의 형사책임, 사내하청 근로자의 사용자로서 민사책임 등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4. 길었던 투쟁이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의 법적 투쟁, 9년2개월 만에 단 하나의 소송사건이 마침표를 찍었다. 하나의 소송사건이 비정규직 투쟁을 되살렸고, 이제 정규직화라는 목적으로 이 나라 비정규직 투쟁을 달려가게 하고 있다. 힘든 법적 투쟁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철폐라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여정에서 보자면 길고 힘든 투쟁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지난했던 10년의 비정규직 투쟁은 이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철폐로 달려 나가는 새로운 투쟁의 10년으로 이어져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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