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사분오열된 진보정치 활동을 한데 응축시키기 위해서는 금배지 쟁탈전과 경제조합주의에서 벗어난 정치·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제2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새로운 진보통합정당 건설’ 토론회에서 “도덕적으로 흠 없는 지도자를 통한 대중 진보정당 운동이 필요한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노동 중심 진보정당 통합을 추진하는 전국정치단체 새로하나가 주최했다.

보신주의로 얼룩진 진보정치 통합운동

하 전 본부장은 발제를 통해 국내 진보정치 운동에 대한 현장 인식이 불신을 넘어 혐오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보수정권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내부 갈등으로 기본적인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노조 조합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에게 밥을 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데 나를 포함한 정당·노조 활동가들이 그런 직관을 무시하고 그들을 끌고 나가려고만 했다”며 “최근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는 갑을 논쟁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이슈조차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 주도해 나갔다”고 우려했다.

하 전 본부장은 특히 노조나 정치조직 지도층들의 보신주의가 결과적으로 대중들이 진보운동을 외면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비판했다. 보신주의가 사상 구분을 가장한 ‘금배지 싸움’과 정규직·대공장 중심 노동운동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이어진 진보정치의 실패는 정파 간 사상이나 노선 투쟁이 아니라 금배지를 향한 종파세력들의 탐욕 때문”이라며 “노조운동도 경제조합주의로 흘러 자본을 강화·부역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브라질 사례를 국내 진보정치·노동운동이 설정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다. 하 전 본부장은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금속노조 위원장 시절 30% 임금인상을 포기하더라도, 노조 정치활동의 자유를 요구하고 쟁취했다”며 “획일적인 정치세력이 아닌 각각의 주특기를 포괄해 13개의 진보좌파 정치세력을 결집한 끝에 PT당을 창당하고 정치권력 교체를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진보에 부합하는지부터 돌아봐야"

그는 지난해 드라마 <정도전>으로 재조명된 조선 건립 과정을 언급하며, 분열된 진보세력이 하나의 주류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외연을 넓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 전 본부장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혁명에 성공한 정도전이 북방의 이성계를 찾아갔듯이 진보세력이 통합하고 실력을 갖추려면 압도적인 도덕성을 갖춘 새로운 리더를 발굴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울산처럼 노동자 출신이 구청장이 돼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잘못된 진보정치를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토론자들은 통합을 논의하기에 앞서 진보세력이 그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 같은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확산을 비롯해 국민 삶을 피폐화하는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탁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통신비정규직을 포함해 전국 비정규직 투쟁의 현실을 알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집단은 단언컨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라며 “노동자를 앞세운 정치를 표방하는 진보정당들이 통합을 논하기 이전에 과연 노동자들과 함께 뒹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상구 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은 “현장 노동자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며 “민주노동당 이후 분열된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식의 조건 없는 진보대통합은 또 다른 분열을 잉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계 내부에서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적 소통이 부족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장호 전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은 “과거 민주노총의 특정 정당 배타적 지지는 대의원대회 결정이지 산별대의원들의 결정은 아니었다”며 “노동운동 내에서 산별과 정파 간 주도권 다툼을 하나로 모아 내고, 단일후보를 만들어 힘 있게 총선을 견인하고 추동해 낼 만한 지도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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