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다음은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주요 문구다.

"비정규직 남용의 구조적 요인으로서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 완화. 직무급 및 성과연봉 임금제도의 도입을 활성화해 임금체계의 유연화 유도. 고령자에 대해서는 기간제근로 제한 대상에서 제외. 기술변화와 기업수요를 감안해 파견허용직종 합리적 조정."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고 생각했는가. 놀랍게도 이 문구는 2006년 9월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고용개선 종합계획’에 담겨 있다.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를 ‘과보호’받고 있는 정규직에게 돌린 점, 비정규직 사용의 ‘구조적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해고를 쉽게 하고 직무급·성과급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 노동시장 취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제시한 점 등 박근혜 정부의 대책은 그 철학과 내용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책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정치적 수사와 지지층이 사뭇 다른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노동정책에서 놀라울 만큼 일관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 자본주의의 ‘비밀병기’라는 것이다.

우선 비정규직 고용은 노동법상 해고보호 제도를 우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경직된 노동법적 보호’ 운운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의 제한(근로기준법 23조)은 900만명 가까이 되는 비정규직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쓰여 있기만 하면, 사용자는 언제든지 ‘계약기간 만료’를 들이밀며 적법하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해고보호 조항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 4인 이하 사업장 360만명의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법적으로 해고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는 노동자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둘째, 비정규직 고용은 차별을 넘어 노동법을 위반한 열악한 노동조건마저 감내하도록 만드는 기제다.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계속고용 생사여탈권을 사용자가 쥐고 있는 한 부당한 노동조건과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2007년 기간제법·파견법에 차별시정 절차가 도입됐지만 이를 활용하는 경우는 연간 100건도 되지 않는 현실은 “고용보장 없이 권리 주장도 없다”는 노동법 역사의 진실을 웅변한다.

셋째, 비정규직 고용은 정부와 기업으로서는 매우 저렴한 '사회안전망'이다. 한국 사회 실업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낮은 이유는 빈약한 사회보장제도에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열악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는 반실업자들에게 ‘공공근로’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단결과 저항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다. 기간제·특수고용·파견·용역이라는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사실상 봉쇄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내부를 분할하고 경쟁시키는 전략에도 취약하다.

논의시한이 한 달여 남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사실상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여야가 병존하는 정치권에서, 이러한 ‘비밀병기’를 조금이라도 포기하는 안이 나올 수 있을까. 노동조합은 지난 15년의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