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
공인노무사
(광주광역시비정규직지원센터)

2월 초 광주광역시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돌봄전담사 A씨가 서류 한 뭉텅이를 안고 찾아왔다. 서류 뭉치에는 근로계약서와 업무일지, 각종 지침이 들어 있었다. A씨는 7개월 동안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고 2월 말에 계약이 만료되는데, 교육청에서 돌봄교실을 외부에 위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업무가 위탁업체로 넘어가게 생겼다고 했다.

광주지역에는 330여개의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돌봄교실은 교육공무직 돌봄전담사(무기계약직)가 운영하는 전용교실과 기간제 돌봄전담사가 운영하는 겸용교실로 나뉜다. 이 중 기간제 돌봄전담사가 운영했던 겸용교실이 위탁운영 대상이다. 겸용교실을 지역돌봄기관 등에 위탁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2014년부터 위탁이 추진되면서 현재 광주시 13곳에 민간위탁 돌봄교실이 있다.

2월28일이면 돌봄전담사들의 기간제 근로계약이 일괄적으로 끝난다. 광주시교육청이 이때를 민간위탁 확대 시점으로 본 것이다. 현재 교육청 지침에 따라 많은 초등학교가 민간위탁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A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A씨가 들고온 근로계약서에는 기가 막힌 내용이 있었다. ‘을의 근무시간 월요일~금요일 13:00~17:00(4시간)(매일 2시간 특기적성수업, 매일 2시간 자원봉사)’라는 조항이다. 근무시간을 4시간이라고 해 놓고 그중 2시간은 자원봉사로 정한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주 10시간 근로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경악할 일이다.

A씨의 업무는 이렇다.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프로그램 수업을 하고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학생들 과제와 간식지도를 한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또 프로그램 수업을 하고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과제지도와 귀가지도를 한다.

하지만 A씨가 급여를 받는 시간은 프로그램 수업을 하는 2시간뿐이다. 나머지 2시간은 자원봉사 시간이다. "자원봉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학교에서 채용을 할까요"라고 물었더니 A씨는 "채용하지 않았을 걸요"라고 답했다.

자원봉사는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을 조건으로 맺어진 봉사는 자발성에 근거했다고 볼 수 없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업무가 있으며 이에 대한 지시·감독을 받고 그 시간 동안 취업규칙 등 근무규율을 준수해야 한다면 그 시간은 봉사시간이 아니라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무시간이다.

광주시교육청의 돌봄교실 운영계획에는 오후 겸용 돌봄전담인력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채용하도록 돼 있다. 다만 위탁운영은 20시간까지 가능하다. 결국 교육청은 20시간 해야 하는 일을 억지로 15시간 미만으로 맞추려고 이런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왜 주 15시간 미만일까. 노동법은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4주 평균)를 여러 가지 법적 보호조항에서 제외하고 있다. 1주 1일의 유급휴일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고 연차유급휴가를 주지 않아도 된다. 4대 보험에 안 들어도 되고 1년 이상 일을 해도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여러모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교육청은 이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법적 의무도 피할 수 있다. 현재 교육청은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가 1년 이상 근무한 경우 교육공무직화(무기계약직)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최근 경북지역과 충남지역 초등 돌봄전담사들의 사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계약하기 위해 10분 단위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1주 근로시간이 14시간40분이 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광주시에 비하면 다른 지역 사례는 오히려 신사적으로 보일 정도다. 하루 2시간의 공식적인 무료노동을 강요하는 광주시교육청에 비하면 다른 곳에서는 그나마 일한 시간에 대한 급여는 주지 않느냐는 말이다.

초등 돌봄교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으로 2013년부터 전국 6천개 초등학교에서 시행됐다. 저소득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에게 공공 무상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훌륭한 취지였다.

하지만 그 정책 안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없었다. 그나마 일부 돌봄전담사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교육공무직화를 쟁취했으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시간제 비정규직, 외주위탁 소속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온갖 편법과 갑질로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위탁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 초등 돌봄교실 정책의 밑바탕이다. 생색은 내야겠고 예산은 주기 싫으니 노동자를 쥐어짜자는 것이다. 그렇게 외쳐 대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개나 줘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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