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언제부터였던가. 개념이 의미를 잃었다. 개혁이 노동자를 기만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노동운동이 길을 잃어 버려서인가.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겠다고 투쟁하던 노동조합이, 노동자도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던 노동운동이 자본의 세상을 헤매다 투쟁이 사라졌다. 노동절 기념식에서 불리는 노동가에 선언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노동운동사로 읽자면 오늘은 배반의 시간이다. 노동을 위한다는 개념들이 노동자를 기만하고 서 있다. 인민을 위한다는 진보도 오래전에 의미를 잃고서 민주주의·기본권 등 인민이 가진 것을 지켜 내겠다는 의미로 퇴색돼 버렸다. 그러니 그 민주주의를 믿고서 이 세상에서 꿈꾸는 노동의 개혁도 의미를 잃고서 이제는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는 것을 노동의 개혁이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는 무표정하다. 노동운동은 무기력하다.

2.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노사정 대표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오찬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노사정 대표자들을 만나 3월 말까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마무리해 달라고 요청하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지지부진했던 논의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이날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가 발달된 서구 사례를 보더라도 이행 과정상 진통이 수반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물리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쫓겨 논의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부실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고, 정부에서는 합의시한에 대해서는 3월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공론화 과정과 절차를 위한 현장과의 대화를 늘리기로 했단다. 박 대통령은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 재도약도 지속성장도 어렵고, 사회통합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오늘 노동시장 개혁은 권력의 의지다. 정부는 노사정위 합의시한까지 정해 놓고서 개혁을 강력하게 독려하고 있다. 노조는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가 있어야 한다며 권력의 밀어붙이기 개혁에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 1월12일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당시 발표한 신년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상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해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이루겠습니다. 노동시장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비정규직 차별화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는 어렵습니다. 지난 12월23일 노사정 대표들께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합의했는데 우리나라도 네덜란드나 덴마크와 같은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보았습니다. 노동시장이 개선되면, 우리의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가지게 될 것이며,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입니다. 노와 사는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3월까지는 반드시 노동시장 구조개혁 종합대책을 도출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상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비정규직 차별화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의 해소, ‘사회적 대타협’,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등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혁을 말해 준다. 지난해 12월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최근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막고 우리 경제를 저성장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며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격차, 노동시장의 경직성, 일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등은 노사 간, 노노 간 갈등을 일으켜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임금구조는 심하게 경직된 연공서열형으로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의 인건비가 신입직원의 2.8배에 달하는데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이런 문제들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등 선진국이 노동개혁을 통해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듯이 우리나라도 노사 간 긴밀한 토론과 협의를 통해서 바람직한 방안을 만들어야 하겠다"라며 "노사정위를 본격적으로 활용해서 이러한 문제를 논의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일자리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노동시장 개혁에 관해서 정부는 이렇게 내용이 정해져 있었다. ‘상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비정규직 차별화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의 해소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 나라 최고권력인 대통령은 말로 분명히 들려 줬다. 그리고 지난해 12월29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처우개선 및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이라는 부제를 붙인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으로 그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3.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의 정부안이라고 발표한 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만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혁이 망라돼 있다. 이 종합대책에서 3개월 이상 근무한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퇴직급여 보장, 국민 생명·안전 핵심업무의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사용 제한, 본인 신청시 사용기간 연장 및 이직수당 지급, 갱신횟수 제한, 인력난이 심한 업종의 파견 규제의 합리화, 고령자 및 고소득 전문직의 파견 허용 확대, 파견과 도급의 구별 기준 명확화 등이 비정규직에 관한 것이다. 이 비정규직에 관한 대책들은 사용 기간 및 예외적인 허용 대상자를 확대해서 사용자로 하여금 폭넓게 사용하도록 하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급여 및 이직수당의 지급과 복리후생의 차별 금지 등 처우개선을 하겠다는 것이다. 본인이 신청하는 경우라고 해서 마치 사용기간 연장을 비정규 근로자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기간제·파견 등 비정규직 계약 자체가 근로자 본인이 사용자와 합의해서 하는 것이라고 해서 비정규 근로가 비정규 근로자를 위한 것일 수가 없는 것처럼 그저 권력의 포장 기술일 뿐이다. 결국 정부의 대책안은 기간제 및 파견 등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비정규직 사용을 촉진하는 방안이라 할 만하다.

사내하도급에서 논란이 돼 온 파견 근로와 관련하여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 구별기준을 명확히 하면 원청사업주는 논란이 없이 합법적으로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사용자를 위한 대책이다.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지 않는 비정규직 대책이라면 비정규직법을 엄격히 집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나마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에 관한 권력의 집행의지가 먼저다. 대책에는 정규직 채용 확대를 위해서 인력운영의 유연성을 확대하겠다며 노동시장에 관한 전반적인 개혁안을 포함하고 있다.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하는 휴일근로는 근로기준법상 이미 연장근로인데도 노동부가 연장근로가 아니라고 행정해석해 왔으니 이를 시정해서 집행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를 법 개정을 통해서 하겠다며 근로시간단축을 통해 정규직 채용 확대를 위한 인력 운영을 위한 대책이라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대책 없는 노동부의 대책이다. 그러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재량근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근로시간단축 대책에 포함하고 있다. 과연 정부안이 근로시간단축을 위한 대책인지 의심스럽다. 임금피크제 확산을 지원하고,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을 추진하며,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을 명시하는 것으로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하고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할 수 있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겠다는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종합대책에 포함시켰다. 임금피크제·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하고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크게 제한하는 고정성 요건까지 포함해서 통상임금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근로자 임금권리의 향상이 아니라 저하를 의도한 대책이다. 그리고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근로계약 해지에 따른 노사분쟁 예방을 위한 대책이지 해고 규제를 통해서 근로자 고용을 보호하겠다는 방안이 아니다. 취업규칙 변경의 기준·절차를 명확히 하겠다는 것도 임금피크제 등을 수월하게 도입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한 것으로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를 위한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대책은 비정규직 사용을 보다 확대하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며 정규 근로자의 근로시간·임금·고용 등에 관한 권리를 저하시키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현재의 정규직 수준으로 임금·고용 등 처우를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처우를 저하시켜 사용자로 하여금 굳이 비정규직 사용할 유인을 없도록 노동시장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나라 노동시장에서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없는, 모든 노동자를 이른바 ‘중규직’으로 만들고자 하는 개혁이다. 노동자를 위한 개혁이 아닌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권력의 의지를 밝혔다.

4. 3월 말이라고 했다. 노사정위 합의시한이 3월 말이고, 4월에는 노동시장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정말로 이 나라에서 노사 대타협, 노동문제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말한다면 노사정위에서 정부는 참관인이어야 한다. 합의도 하지 않은 사항을 정규직의 권리를 빼앗겠다고, 비정규직의 사용을 확대하겠다며 사용자를 위한 대책을 노동시장 개혁이라 칭하고서 권력의 개혁 의지라고 발표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는 것을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노동자와 노조를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소득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국민경제의 성장은 국민의 피땀으로 이룬 성장의 과실이 경제권력을 차지한 자들의 것이 돼 국민을 배반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권리를 저하시키는 노동시장의 개혁은 노동자의 노동으로 이룬 기업의 과실이 기업을 차지한 자본의 차지가 돼서 노동자를 배반한다. 노동의 개혁이 노동자를 배반한다면 노동자의 손에는 배반의 개혁에 반대해야 한다는 선택지만 남는다. 개념이 의미를 잃은 세상에서 묻는다. 개혁이냐 배반이냐.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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