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파업을 둘러싸고 노조와 정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4일 전국금융산업노조가 “11일부터 전 은행권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힌 데 이어 정부 역시 “한치의 양보도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노조는 일단 대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으나 쉽사리 통로가 마련될 것 같지는 않다. 이용득(李龍得)금융노조위원장이 강경한 입장인데다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도 ‘원칙 고수’ 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필요한 경우 공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정부측 입장이다.

금융노조의 파업으로 금융 기능의 ‘두뇌’인 전산이 마비될 경우 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친다. 금융노조 이위원장은 “3일 22개 금융기관의 전산 담당자를 따로 만나 파업 동참을 다짐받았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전산이 마비되는 경우 대금이나 어음 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 3일 만에 연쇄 부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기관측은 “노조원이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차장급 이상 관리자나 계약직 등 대체 인력을 투입하면 ‘전산 마비’ 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산이 마비될 경우▼

▽일반 고객〓입금은 제한적으로 가능하지만 출금은 불가능하다. 고객이 제시한 △통장 잔액 △수표의 부도 및 도난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없기때문.

우선 자동입출금기(ATM)를 사용할 수 없다. 타행으로의 송금은 물론 공과금 할부금 등 자동이체서비스도 받을 수 없다. 신용카드의 경우엔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현금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지로 용지로 낼 수 있는 세금은 파업하지 않는 은행 기관을 이용하면 된다.

파업이 시작되면 수표 등 전산 거래가 불가능해지므로 어느 정도 현금을 확보해 두려는 고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 고객〓거래처와의 대금 결제에 사용되는 텔레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이 전면적으로 멈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이 물건을 팔고 결제 대금으로 A은행이 발행한 어음이나 당좌수표를 받은 경우 A은행 외에서는 현금화할 수 없다는 데 있다. A은행에서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도난 및 분실 여부를 확인해야 하므로 장시간 대기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기업들이 결제를 못해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모든 외환 업무가 중단되기 때문에 수출입 업무도 마비된다.

▼기타▼

금융결제원의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중은행의 전산시스템이 부분적으로 가동되더라도 은행간 자금 결제에 차질을 빚게 된다.

예컨대 고객이 A은행에 B은행이 발행한 수표나 C회사가 발급한 어음을 제시하면 돈을 찾을 수는 있다. 그러나 두 은행간 지급 차액에 대해서는 금융결제원의 결제가 불가능해져 금융기관 사이의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고객이 은행에 세금 등을 지로 납부할 수 있지만 기업이나 정부는 금융결제원으로부터 대금을 받을 길이 없어져 일시적인 자금 부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금융결제원 파업은 시중은행의 동시 전산 마비에 버금가는 파괴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철환(全哲煥)한국은행 총재가 4일 금융결제원을 찾아 파업 자제를 당부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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