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이 지나고 난 뒤였다. 양대 노총 제조부문 노동자들이 다시 뭉친 것 말이다. 지난 2002년 9월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와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손을 잡은 후 처음이다. 이번엔 양대 노총 산하 6개 제조업 노조 상급단체가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제조부문 공동대책회의에 소속된 조합원만 36만명에 달한다. 사실상 양대 노총의 핵심이다.

제조업 노동자를 공동투쟁 무대로 소환한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었다. 대척점에 서 있는 사용자도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였다. 노동시장 양극화와 임금격차는 ‘정규직 과보호’ 탓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표적은 사실상 양대 노총 제조업 정규직 노조다. 물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작한 ‘마녀사냥’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담으면서 정·비정규직 모두 도마 위에 올랐다. 양대 노총 제조부문 노조는 개혁 주체가 아니라 개혁 대상이 됐다. 그들은 몰릴 대로 몰린 셈이다.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동대책위가 무대 전면에 다시 나선 까닭이다.

그들이 손 잡았던 13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공교롭게도 당시에도 ‘노동시간 단축’이 쟁점이었다. 주당 법정근로시간 44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이다. 김대중 정부는 공약사항인 주5일 근무제를 이행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에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근로시간단축 기본합의에 이어 100여 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노사정 협상은 2002년 7월 최종 결렬됐다. 정부는 같은 해 10월 노사정 논의를 바탕으로 만든 단독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앞서 양대 노총 제조부문 노조는 “정부 입법안은 근로기준법을 개악해 제조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저하시키는 것”이라며 반발하며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했다. 제조부문 공투본은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단축을 요구하며, 노사정 재협상을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03년 7월 제조부문 공투본은 단일 요구안을 합의하는 데 이르렀다.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투본은 단일 요구안을 국회에 관철하려 했지만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국회는 2003년 8월29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개정안은 정부안이 유지되면서 시행시기만 1년 늦췄다.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주40시간제는 2011년까지 6단계로 시행됐다.

주 40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한 지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뿌리 깊은 제조업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여전하다. 낮은 기본급에 포도알처럼 수당이 매달린 복잡한 임금체계도 그대로 유지됐다. 중소·영세·비정규직에겐 노동시간 단축은 그림의 떡이었다. 되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만 더 벌어졌다. 제조업 노동계가 내건 ‘실 노동시간 단축과 중소·영세·비정규직 보호’라는 원칙은 미완의 과제에 머문 것이다.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과거의 노사정 협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협상의제는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대책과 사회안전망 확충까지 매우 포괄적이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제목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는 양대 노총 제조부문 노조의 연대 활동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를 대변하는 활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정규직 연대를 넘어 제조업 정·비정규직의 연대로 확장돼야 한다.

제조업 공동대책위가 토론을 거쳐 만들 단일 요구안도 마찬가지다. 임금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에 방점을 찍었던 과거의 활동패턴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통상임금 의제에만 쏠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대책까지 포괄하는 단일 요구안이 제시돼야 한다. 이달 24일 제조부문 공동대책위가 개최하는 근로시간·통상임금 합동토론회에서도 이런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노사정 협상이나 국회 입법 논의가 명징해 지고, 풍부해 질 수 있다. '정규직이 과보호받고 있다'는 최경환 장관의 마녀사냥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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