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T-LCD 생산업체 하이디스테크놀로지가 대만자본에 의한 ‘기술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하이디스 대주주인 대만 이잉크사는 회사 살리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이디스가 특허권을 보유한 광시야각 원천기술(FFS)을 경쟁업체에 제공하고 대가를 챙기는 특허권 사업에 집중하기로 경영방침을 세운 상태다.

FFS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하이디스 엔지니어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6일 오후 하이디스 이천공장 미팅룸에서 3명의 엔지니어를 만나 그들의 속내를 들었다. 당사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름과 나이는 밝히지 않는다.<편집자>

 

▲ 구은회 기자


"기술 유출이든 기술 먹튀든 지난 일이에요. 하이디스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가진 회사가 인수했으면 좋겠어요. 하이디스에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을 믿으니까요."

하이디스테크놀로지 윤영준(가명) 엔지니어의 말이다. 그는 회사가 법정관리에 돌입했을 당시 연구직으로 입사했다. 중국 비오이그룹이 4천331건의 알짜배기 기술을 유출하고 철수한 직후였다. 최근 하이디스는 이천공장 폐쇄 방침을 밝힌 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퇴직일은 3월31일이다.

윤씨는 회사 주력 상품인 LCD 3.5세대 생산라인이 멈춘 지금도 평소와 같이 출퇴근한다. 그의 고민은 희망퇴직이 아니라 하이디스 정상화다. 윤씨는 “기술료 수입으로 노후장비를 교체하고, 설비투자를 하면 하이디스는 2~3년 안에 살아날 수 있다”며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이천 하이디스테크놀로지 이천공장에서 김종국 금속노련 하이디스노조 부위원장과 엔지니어 이환준(가명)·이장욱(가명)·윤영준씨를 만났다. 엔지니어들은 “하이디스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안타깝다”며 “기술력이 있는 회사인 만큼 의료·항공 등 특수산업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스티브 잡스도 격찬한 하이디스 FFS

하이디스가 샤프·치메이이노룩스(CMI)와 2024년 3월까지 체결한 특허공유계약 수익금은 5천억원에 달한다. 하이디스가 특허공유계약을 통해 수익금을 얻는 건 광시야각 원천기술(FFS) 때문이다. FFS는 시야각이 넓고, 해상도와 색재연성이 뛰어나 스마트폰 액정에 최적화된 기술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 체제로 재편되면서 FFS에 대한 시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FFS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이장욱씨는 "어렵사리 개발한 기술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편광판 100장을 넣으면 1장 성공할 정도로 어려운 기술입니다. 성공률이 1% 미만이었던 셈이죠. 디자인과 칼라필터를 넣는 순서를 셀 수 없이 바꾸고,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FFS는 몇 년에 걸쳐 힘들게 개발한 기술입니다. 그게 유출된 거예요. 우리 기술을 쓴 다른 회사는 성장했는데, 하이디스는 오히려 주저앉고 있어요.”

하이디스 엔지니어들은 2005년부터 3~4년 매달린 끝에 FFS를 완성했다. 하이디스는 애플 아이폰 열풍이 불던 2009년 LG디스플레이와 FFS 라이선스를 체결했다. 하이디스의 독자 기술이 아이폰을 비롯해 스마트폰에 쓰인 것이다.

이환준 씨는 "FFS는 스티브 잡스가 극찬한 기술이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하이디스 기술력은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극찬할 정도였어요. 그런 회사가 어쩌다 대만 이잉크사로 넘어갔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정부가 나서 한국기업이 하이디스를 인수하도록 했다면 아마 한국은 LCD 부문에서 세계 최강국이 됐을 겁니다. 모든 회사가 우리 제품을 받아 갔겠죠. 현대전자 LCD사업부가 중국 비오이그룹에 매각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씨는 "삼성 제품을 제외한 세계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 FFS를 쓴다"며 "지난해 애플 아이폰 판매량이 1억9천만대를 넘었는데 기술 유출이 안 됐으면 하이디스가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 기술로 다른 LCD 회사들이 성장했는데 왜 우리가 공장 문을 닫아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세계가 쓰는 FFS, 한국정부만 '나 몰라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2010년 TFT-LCD 패널 7세대(1천950밀리미터×2천250밀리미터) 구동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선정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산업기술과 관련해 유출방지·보호를 위해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 3.5세대(730밀리미터×460밀리미터) 이하 LCD를 생산하는 하이디스는 정부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장욱씨는 정부의 국가핵심기술 선정 방식에 의문을 나타냈다.

“4세대부터 6세대까지 테스트를 했는데 근본적으로 다 똑같아요. LCD 패널 사이즈 크기 차이뿐입니다. 기본적인 디자인과 설계는 하이디스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요. LCD 세대가 올라갈수록 설비 크기도 커집니다. 설비 한 대 크기가 3~4층 높이예요. 정부는 설비 공정이 커질수록 공정을 제어하기 어려워 핵심기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김종국 하이디스노조 부위원장은 "LCD 3.5세대는 국가핵심기술이 아니라는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고 비판했다. 사실 비오이그룹으로 기술이 유출되면서 하이디스는 LCD 기술 전도사가 돼 버렸다. 비오이그룹은 현재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회사로 성장했다. 조만간 한국 LCD 회사를 위협할 때가 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비오이그룹은 지난해 4조원을 투입해 충칭 공장에 LCD 8세대(2천200밀리미터×2천500밀리미터) 구동기술을 다루는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비오이그룹은 하이디스를 인수한 지 7개월 만에 중국에서 LCD를 생산했다. 하이디스 기술을 발판으로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이환준씨는 "앞으로는 중국과 대만이 LCD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LCD 패널이 7세대 이상이면 공정을 한 번 돌리는 데 수백억원이 든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백억원 이상이 드는 7세대 LCD 공정은 유지하기 힘들다.

반면 3.5세대 LCD를 생산하는 하이디스는 경쟁력이 있다. 3.5세대 이하는 생산비와 개발비가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항공 같은 특수산업에 쓰이는 LCD를 만들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이 LCD 시장을 주도하면 하이디스가 틈새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이씨는 "더 좋은 회사로 발전할 수 있는데도 회사는 공장을 닫고 기술특허로 장사할 생각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이디스를 살려 주세요"

하이디스는 지난달 29일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와 금속노련 하이디스노조에 희망퇴직 시행 공문을 보냈다. 희망퇴직일은 다음달 31일이다. 이를 두고 회사가 3월 말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철수 방침을 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회와 노조는 희망퇴직과 이천공장 폐쇄 철회를 요구 중이다. 지회와 노조에 따르면 8일 현재 희망퇴직을 신청한 직원은 없다.

이장욱씨는 "200억원을 투자하면 노후한 장비를 교체하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며 "구조조정을 할 필요도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하이디스에는 신기술 개발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문서들이 축적돼 있다. 어떤 회사가 인수해도 성장시킬 수 있는 바탕이 갖춰진 셈이다. 그만큼 체계가 잡혀 있고 기술력이 있는 회사다. 이씨는 "기술료 수입의 30~40%만 투자하면 회사를 충분히 키울 수 있다"며 "이잉크사가 특허 장사만 하려고 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환준씨는 "하이디스는 삼성만큼 경쟁력 있는 회사로 클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료기·항공기에 들어가는 특수 LCD는 일반 LCD와 비교해 네댓 배 비쌉니다. 단가가 비싸 적게 팔아도 많이 판 것 같은 효과가 나죠. 연구진이 (특수 LCD를) 개발하던 중에 회사가 이천공장을 폐쇄했어요. 개발이 중단된 겁니다. 특수 LCD를 예정대로 개발했으면 삼성만큼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어요. 이전보다 발전한 FFS를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회사인데 (공장이 폐쇄돼) 직원이 좌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윤영준씨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다"고 호소했다.

"장비투자만 해 주면 하이디스는 금방 살아납니다. 하이디스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 회사가 인수를 했으면 좋겠어요. 기술이 너무 아깝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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