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 4일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가 낸 조기합병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외환은행에 6월30일까지 하나은행과의 합병 인가를 금융위원회에 신청하거나 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를 개최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법원이 조기합병에 제동을 건 근거는 2012년 금융위의 입회 아래 지부·외환은행·하나금융지주가 맺은 2·17 합의서다. 법원은 5년간 통합작업을 유예하도록 하는 2·17 합의서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했다. 판결 전에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조기합병은 경영권”이라고 했고,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월에 통합예비신청을 받겠다”고 했다. 입장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하나금융·외환은행 경영진, 통합 둘러싼 혼란 책임져야

김보헌
외환은행지부
홍보본부장

2·17 합의서가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 그동안 2·17 합의서가 유효하지 않다면서 부정했던 각종 궤변들이 설 땅을 잃게 됐다. 국회와 시민단체·법조계에서 노력한 결과이자 8천명의 직원들이 숱한 시련 속에서도 외환은행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제3자인 법원도 인정한 2·17 합의서의 효력을 당사자인 외환은행 경영진들이 훼손하고 폄훼했던 것을 직원들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 외환-하나은행을 둘러싼 모든 혼란과 고통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2·17 합의서를 위반하고 불법적이고 일방적으로 합병을 추진했기에 발생한 결과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그에 부화뇌동해 직원들을 탄압했던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수많은 피해와 혼란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 또 IT 통합을 포함해 모든 합병 절차를 중단하고 서울스퀘어 IT통합 부서로 강제이전된 IT직원들도 본점으로 복귀해야 한다. 지금 외환은행지부는 금융위 앞에서 농성 중이다. 법원에서 합병절차를 중단하라는 결정이 나오긴 했지만 금융위와 하나금융이 2·17 합의서를 준수할 의지가 있는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의지가 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쟁은 계속 이어 갈 계획이다.

5년간 독립경영 보장한 2·17 합의서 효력 인정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유지한다는 2012년의 2·17 합의서에도 불구하고 2014년까지 합병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혀 왔다. 이 합의서는 양사와 노동조합은 물론 정부를 대신해 금융위원장의 서명도 있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통합 논의는 노조와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제동을 거는 듯했지만, 슬금슬금 태도를 바꿔 지난달에는 급기야 “노조 합의가 없어도 통합예비신청을 받겠다”는 것으로 돌변했다.

이렇게 무리한 조기합병 시도가 왜 진행됐는지는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진실의 일단이 드러났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무죄 확정된 외환은행이 유죄 확정된 론스타에 400억원 이상의 손해배상금을 의사회 결의도 없이 올해 1월 서둘러 지급한 것이다. 조기합병은 외환은행의 법인격을 완전히 지움으로써 이 문제의 책임도 없애기 위한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금융위가 사실상 부인한 2·17 합의서의 효력을 법원이 최소한 2015년 6월까지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론스타의 책임을 추궁해 온 단체들은 양사가 론스타와의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 주가조작 손해배상금 지급 경위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아가 이미 3년 전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고 떠난 론스타가 여전히 대한민국 금융감독당국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도 멈출 수 없는 일이다.

2·17 합의 부정? 채무자가 빚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2·17 합의서는 앞으로 5년 동안 통합은 얘기도 못하게 하는 계약서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계약서 일방 당사자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계약서와는 상관없이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통합 선언 전에 외환은행지부와 상의를 하거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모양새가 됐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이 같은 하나금융의 일방적인 통합 추진이 부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것이다. 그간 하나금융지주는 경영권의 고유한 사항에 대해 노조가 발목 잡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2·17 합의서가 없었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2·17 합의서가 있다는 전제에서 생각해보자. 하나금융이 2·17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경영상 재량권의 일부를 스스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주장하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외환은행지부는 채권자적 지위에서 채무자인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에게 의무이행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자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은 합의서에 따른 아무런 채무가 없다. 즉 채무자가 빚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금융은 또 지금 당장 합병을 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하는데, 외환은행이 지난 2년간 어려웠던 이유는 하나금융이 경영을 맡고 나서 무리하게 외연확장을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합병을 하고 경영을 강화한다고 해서 수익성 호전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금융위도 문제다. 지난해까지는 노사합의를 강조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말을 바꿨다. 금융위의 무원칙한 대응도 비판받아야 한다.

합의서 부인한 사측, 법이 인정 안 해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

이번 판결의 핵심은 하나금융이 금융당국이 중재·보증 의무가 있는 입회인 자격으로 서명한 2·17 합의서를 부인한 것을 법이 인정하지 않고 노조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2015년 6월까지 합병절차를 중단하라고 해서 언론은 이를 '잠시 중단'이라고 표현하지만 일정한 조건이 없다면 합의서에 입각해 노사합의 없이는 합병을 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 가처분 판결의 내용이다. 사실상 경영상의 급격한 위기나 상황 변화가 없다면 일방적으로 합병할 수 없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해 준 것이다. 합의서 내용이 금융위 중재 하에 작성됐다는 점도 들었지만 노조와 맺은 합의서를 통해 사측의 행위를 규제한 최초의 판결이다.

그동안 하나금융은 주야장천 합의서가 사정이 있으면 바뀔 수 있다고 해 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말을 바꿨다. 한 입으로 두 말한 것이 법원에서 망신을 당한 셈이다. 하나금융은 이제라도 합의서대로 해야 한다. 조기합병이 정말로 절실한 것이라면 시민사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노조를 포함한 내부 구성원들을 솔직하게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게 상식적인 방향 아닐까. 그리고 하나금융 경영진에게 론스타 흔적 지우기를 중단하고 최소한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 간의 투자자-국가소송(ISD)이 끝날 때까지는 조기합병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노사 간 신뢰회복 없이는 정상 통합도 어려울 것 

유주선
금융경제연구소장

지난 4일 법원이 하나금융이 추진하고 있는 외환은행-하나은행 조기합병을 중단해 달라는 노조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는 금융위가 포함된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유지한다”는 노사정 합의 효력을 법원이 공식 인정한 것이다. 하나금융의 주장과는 달리 합의 내용을 어기고 합병을 추진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기도 하다. 조기통합과 관련한 혼란은 금융위의 잘못이 크다. 당시 합의 주체였던 금융위는 하나금융의 통합 예비인가 신청을 접수하고, 조기통합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나금융도 문제다. 은행 간 통합은 노사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노조가 통합 논의에 참여한 상태에서 내놓은 기본적인 요구를 사측이 저버리고 조기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하나금융이 노사 간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행위다. 하나금융지주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동안 통합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노사 간 신뢰회복 없이는 조기통합이 아니라 정상적인 통합 절차를 밟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통합 사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시사하는 점이 크다. 당시 경영진이 가장 주력했던 부분은 노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직의 화학적 통합이었다. 하나금융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훈을 얻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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