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우리는 “아주 24개월을 꽉 채워 쓰이고 버려졌다”는 유서를 남긴 어느 경제단체 20대 계약직 노동자의 죽음과 “계속 이렇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장그래의 삶이 교차하는 2014년을 지나왔다. 그렇게 맞이한 2015년이다.

3월을 앞두고 노동시장 구조개혁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이 다시 달궈지는 듯하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집담회를 열고 국회에서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연말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골자로 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대열의 맨 앞에 청년세대를 내세우고 있다. ‘유연한 노동’을 전면으로 확대해 정규직 고용보호 수준을 완화해야 기업들이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우리 시대 슬로건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이라도 된 것일까.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정부나 사용자단체도 마찬가지다. 각종 노동문제에 대응하는 핵심 논리에 청년 일자리가 등장한다. 최근 사회분위기에 따른 유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라고 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고용을 보장하라고 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을 보면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청년 일자리를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해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보장에 반대하고 싶은 것인지.

정부가 장그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른바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 노조를 공격하는 무기로 장그래의 이미지를 선택했다.

어떤 정책방향이 장그래의 삶을 진짜로 위한 것인지는 명확히 나와 있다. 정부가 내놓은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청년노동·일자리 문제 해결에 실패한 정부가 청년과 관련해서는 정작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정책을 ‘장그래법’이라며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사이 날이 갈수록 심화하는 취업난의 결과로 청년노동의 질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2년짜리 계약직 ‘장그래’로 상징되는 불안정한 청년의 삶이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삶의 고비용 구조, 고용의 질 악화, 불안정 저임금 노동, 부채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쇄구조는 이미 단단하게 완성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비정규직 양산 대책과 다를 바 없는 방안을 발표하고서는,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위협하기 위해 장그래의 삶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또 하나의 희망고문이다. 절박한 지경에 내몰린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최소한 ‘잠재적’으로라도 괜찮은 일자리, 적어도 조금씩은 나아지는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자리다.

게다가 노사정위에서 장그래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시대 수많은 진짜 장그래들의 구체적인 삶에는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저마다 먼저 장그래를 구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선다면, 노·사·정·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든 실패할 것이다.

더 늦지 않게 새 우물을 파지 않으면 청년 장그래를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약자들의 삶은 완전히 메말라 버릴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어떤 우물을 새로 파야 할지, 장그래의 목소리를 듣자. 장그래 살리기, 결국에는 장그래의 삶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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