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후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조와 사용자 간 협상을 통해 임금을 결정해 왔다. 기업들은 이런 집단적 임금결정구조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기업들은 연공급 임금체계를 문제 삼았다. 근속연수가 높아질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제는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2013년 노동자 평균 근속연수는 6.4년에 불과하다.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은 돼야 평균 근속연수가 10년을 넘는다. 연공급 임금이 기업에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기업이 연공급 임금체계를 문제 삼는 것은 단지 임금총액에 대한 부담 때문은 아니다.

기업과 정부는 임금을 직무성과급제로 전환시키려고 애써 왔다. 2013년 통상임금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즈음 정부는 ‘임금제도 개선위원회’를 만들고 직무성과급제를 관철시키려고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2014년 1월 정부는 별도로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반영하면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만들었다. 같은해 3월에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만들어 직무성과급제를 강제하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직무성과급제가 ‘합리적 임금체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2014년 12월에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문제이며, 노동시장 공정성을 위해 직무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자고 한다. 직무성과급제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깎기 정책임을 시인한 것이다. 임금체계를 이렇게 바꾸려면 단체협상도 해야 하고 취업규칙을 바꿀 때 전체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반대할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취업규칙도 기업이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2015년 1월 정부는 2단계 공공부문 정상화 추진 방향을 내놓고, 성과연봉제 대상을 확대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을 선도하겠다고 나섰다.

직무성과급제로 임금을 바꾸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다른 노동 다른 임금’ 원칙으로 대체된다. 기업이 직무를 마음대로 구분하고, 그 직무에 따라 고용형태와 임금을 달리해도 차별이 아니다. 직무성과급제는 낮은 기본급과 비중 높은 성과급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 성과에 따라 임금수준이 달라진다. 공공부문에서도 성과급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 기업에 순응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정부는 ‘경영평가 항목’을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한다. 직무성과급제는 임금의 집단성을 완전히 해체한다. 직무결정과 성과측정은 모두 기업의 권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결국 임금에 대한 결정권이 기업 일방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 명동에 있는 1급 호텔인 세종호텔에서 이미 벌어진 일이다. 세종호텔은 손님이 많을 때에는 높은 노동강도로 노동자들을 부려먹더니 이제는 매출이 하락하므로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다.

복수노조 중 다수노조와 일방적으로 연봉제 확대에 합의하고 밀어붙였다. 연봉은 직무와 성과에 따라 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결국 노동조합 활동에 열심이었던 이들을 일방적으로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하고, 4천500만원 가까이 임금을 받던 40대 중반 가장의 연봉을 2천900만원으로 깎아 버렸다. 성과와 직무를 정하는 권한이 기업에게 있는 상황에서 직무성과급으로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특히 이것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안에서 내놓은 ‘저성과자 해고방안’과 연결된다. 기업이 마음대로 전환배치를 단행해 놓고는 성과가 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호텔은 홍보업무를 담당하던 전 세종호텔노조 위원장을 웨이터로 발령했다. 정부의 통상해고 가이드라인이 현실화하면 그가 웨이터로서 성과를 별로 내지 못한다면서 다시 해고하는 것이 정당화될 것이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바로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일반화됐을 때 벌어질 일들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서 총파업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그 파업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세종호텔노조는 비록 소수노조지만, 노동조합의 존재 의미를 다시 찾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빼앗을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 주며,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노동자 권리를 찾고 집단적 힘을 되찾는 것이라면, 이렇게 다치고 깨지면서도 꿋꿋하게 맞서고 있는 이들을 존중하고 그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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