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였다. 경기도 이천의 하이디스에서 방문했다. 도대체가 사용자인 회사가 찾아올 리 없을 테니 나를 찾아온 것은 당연히 노조였다. 공장을 폐쇄하고 그 노동자 모두를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했다. 이미 회사 주인이 그렇게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하이디스테크놀로지 주식회사가 이 사업장의 정식 명칭이다. 상담을 하다가 회사의 과거 이름을 듣고서야 나는 이 사업장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비오이하이디스테크놀로지, 1989년 현대전자 LCD 사업본부로부터 시작해서 2002년 중국의 비오이 자본에 매각됐던 그 사업장이었다. 그리고 2006년 비오이 자본이 철수하고서 2007년 대만의 이잉크 자본에 매각돼서 하이디스테크놀로지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었는데 2008년에는 비오이그룹의 하이디스 기술자료 4천331건 유출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동안 수천 명에 이르던 직원은 약 400명 정도로 줄었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을 듣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인원 감축·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수도 없이 노동자들을 퇴직시켜 왔다는 말을 듣기도 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희망퇴직 신청서와 합의서를 읽지 않고서도 보였다. 정리해고 위협을 받으며 희망퇴직 등으로 사업장을 떠나고, 그걸 버텨 내고서 남았을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리해고·희망퇴직·명예퇴직 등으로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자행되는 이 나라에서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고용불안의 상황을 헤쳐 왔을 그들이 보였다. 이렇게 지난주, 상담을 받고서야 나는 하이디스 문제를 알았고, 정리해고 위협 아래 놓인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보였다.

2. 회사의 주인인 대만 이잉크사는 이미 하이디스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하이디스 사용자는 지난달 7일에 공장 직원 모두를 정리해고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하고서 이에 관한 협의를 하자고 해 왔다. 결정된 바에 따라 공장의 폐쇄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적자 사업장이라서 하는 공장폐쇄가 아니다. 장래 경영상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경영판단으로 하는 정리해고가 아니다. 2013년 대만 이잉크사의 당기순이익은 10억원에 불과했지만 하이디스의 기술료 수입은 584억원이나 됐고, 지난해 이잉크사는 20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하이디스는 잠정적으로 1천200억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렸다고 보도됐다. 하이디스의 광시야각 원천기술(FFS)은 샤프·아우오·시피티·시엠아이·비오이 등 삼성과 엘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형 LCD 업체가 공유하고 있어서 하이디스가 이들 업체와 2024년 3월까지 체결한 특허공유계약의 수익금이 5천억원에 달한다는 내용까지 언론에 보도됐다(매일노동뉴스 2015년 2월2일자). 공장을 폐쇄해도 경영상태는 우량한 사업장이다. 아니 가동해 봐야 적자인 공장을 폐쇄하면 경영상태가 더욱 우량해질 사업장이라고, 그래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겠다고 대주주 이잉크사는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지난 1월29일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에 보낸 희망퇴직 시행 관련 공문에 희망퇴직 신청자로 하여금 제출하도록 첨부한 ‘확인서’에서도 특허사업 방해금지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확약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즉 확약서에서는 희망퇴직 신청자 본인은 “향후 회사의 특허사업의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체의 행위”와 “회사의 특허사업에 종사하게 되는 임직원들을 모욕·비방하거나 또는 달리 해당 임직원들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여타 손해를 줄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장을 폐쇄하고서 특허사업의 수입을 온전히 순이익으로 챙기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공장폐쇄에 따른 정리해고는 부당해야 마땅하다.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사업장인데도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적게 내는 사업 부분의 노동자 모두를 정리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법이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보다 많은 이익을 챙겨 가기 위해서 하는 공장폐쇄에 따른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법원은 판결로 선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이 이러한 행위를 용납한다면, 즉 법원이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근로기준법은 더는 해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 주는 법이 아닌 것이고 법원은 법 위반을 법으로 공인해 주는 사용자의 기관에 불과하다고 취급해야 한다. 그런데 감히 어째서 이런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말인가. 특허사업 운영을 위한 수십 명의 사무관리직을 제외하고서는 모든 노동자를 내쫓겠다는 일이 이 나라에서는 당연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말인가.

3. 하이디스에만 하이디스가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소유한 주인이라면 노동자를 내쫓아서라도 회사의 이익을 챙기겠다고 하고 있다. 그걸 당연한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권리라고 정리해고 실시는 감히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관여할 수 없는 사용자의 경영권 본질이라고 이 나라 법원은 주인으로서 사용자의 불가침의 권한이라고 반복해서 판결해 왔다. 물론 하이디스처럼 기술료 수입으로 경영상태가 양호한데도 공장을 폐쇄하고서 노동자 모두를 내쫓기 위해서 하는 정리해고를 법원이 정당하다고 판결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지금은 아니라도 장래에 올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될 수 있다고 정리해고를 실시해 왔던 것이고, 이 나라에서 법원은 그런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해 왔다. 그저 인원을 감축할 객관적인 합리성만 인정되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판결해 왔다. 회사의 주인이 행사하는 경영권 사항이니 정리해고 실시 앞에서 노동자는 주인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노동자는 주인의 처분에 자신의 운명이 맡겨진 노예였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그랬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그렇게 취급해서 정리해고를 했고, 법원은 위와 같이 그런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정리해고가 이러했으니 그런 정리해고 앞에 자신의 운명이 맡겨질 노동자는 희망퇴직·명예퇴직이라도 감지덕지라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해지자. 공장폐쇄·정리해고 실시 등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운명이 결정되는 행위에 그 노동자나 노동자 대표, 노동조합은 없다. 있으나 마나, 의견만 들어 주면 그만이고 설사 들어 주지 않아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협의’말고 할 수 있다고 법이 노동자에게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 회사가 매각되면 매각되고 회사가 구조조정하면 구조조정되는 자라고 법원은 법을 선언해 온 거 말고는 없다. 수십년을 일해서 노동자들이 특허 등 기술을 개발해서 회사를 성장시켜 왔어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의 처분으로 회사와 노동자의 운명이 결정되고 마는 거 말고는 없다. 그러나 이런 나라만 있을 거라고 함부로 단정 짓지 말라. 일하는 노동자는 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세상만 있을 거라고 제멋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라서 별 수 없이 이 나라는 그런 거라고, 자본이 주인인 자본의 세상이라며 이 세상은 별 수 없이 그런 거라고 성급하게 규정지을 것 없다. 성급하게 단정해서 규정짓는 자에게서는 절망의 몸짓만 나올 뿐이다. 저지할 수 없는 정리해고를 두고서 반대의 구호만 외칠 뿐이다. 일하는 노동자가 사업장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자본의 주인이라는 세상의 법조차도 금지하고 있지 않다. 일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지 않는다고 근로계약·단체협약으로 정하는 걸 정리해고를 규정하고 있는 이 나라의 법조차도 금지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하이디스는 어디에도 있다. 어제는 쌍용차에서, 오늘은 하이디스에서, 내일은 또 다른 사업장에서 하이디스는 있다. 정리해고를 허용하고 있는 법과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실시는 사용자의 고유 권한, 경영권 사항이라고 선언하는 법원의 판결에 좌절하는 이 나라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는 하이디스는 어디에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법이 보장해 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법보다 우월한 수준의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고용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이 교섭과 투쟁으로 체결해 낸 단체협약의 효력까지 법원이 법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설사 법원이 정리해고 실시 등 구조조정에 관한 사항에 관해 노동조합과의 합의 내지 동의를 협의 정도의 의미로 판결했다고 해도 노동조합은 좌절하지 말고 노동자 고용 보장을 위해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하이디스의 나라에서 노동조합의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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