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이었다. 친분이 있던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를 오랜만에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안부를 묻고 일상 얘기를 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주제가 됐다. 그는 “기업들이 돈을 아끼려고 하도급을 늘리다 보니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이러다가 우리 애도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까 봐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고위 공무원으로서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편한 자리이다 보니 ‘부모’로서 얘기를 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정부 비정규직 대책과 노동시장 구조개선 대책이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최대한 60세까지 일하게 하고, 가급적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직접고용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밝혔다. 노동부가 제시한 큰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오히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노동시장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이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하향 평준화’를 지향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는 재계대로 비용부담이 커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노동부 정책입안자들도 파견과 하도급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에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간제나 파견근로를 강하게 규제하면 오히려 사내하도급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생긴다"고 걱장하는 것도 사실 같은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말은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간접고용이 늘어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정책에 대한 논란을 떠나 아쉬운 것은 이 지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국가는 뭘 했냐는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장관을 포함해 고위 관계자들의 브리핑에서도,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한 정부안과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그간 정부정책·행정집행에 대한 유감이나 반성을 찾아볼 수 없다. 현실적인 어려움만 강조하면서 핑계대기에 급급하다. 노동시장 격차의 책임을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에게 돌리는 듯한 인상마저 느껴진다.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고위 공무원으로서 먼저 진심 어린 반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정책이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진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고위 공무원의 마음은 모두 같지 않겠나. 부모로서의 책임과 국가 고위 공무원으로서의 책임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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