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단체가 만들고, 경제일간지가 띄운 신조어가 있다. 바로 ‘채용절벽’이다. 자극적인 이 용어는 대기업들이 가입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 제목이다. 앞으로 6년 동안 청년들은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취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 60세 정년제가 시행되는 탓이다. 때마침 대한상공회의소는 500대 대기업 중 2015년 채용 계획을 확정한 180곳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채용 인원은 지난해보다 2.3% 줄었는데 이 가운데 31.1%가 채용 인원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게다가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9.0%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채용절벽이 눈앞에 다가 왔음을 알리는 조사결과다. 이를 인용해 보도한 언론사들은 “임금피크제 시행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정년제 시행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채용절벽은 사라질까. 정년제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정년제란 노동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노동 능력·의사와 무관하게 근로계약을 종료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 정년제는 60년대 산업화 초기단계에 일본의 연공급 인사제도가 도입되면서 시행됐다. 고도 성장기에 기업은 양질의 노동자를 확보하고,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정년을 보장했다. 정년제가 급속히 약화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명예퇴직과 정리해고가 확산된 탓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정년제 사업장의 평균 정년은 58.6세지만 실제 퇴직 연령은 53세다.

정년제가 다시 부각된 것은 ‘초고령 사회’ 진입과 관련 있다. 지난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6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될 예정이다. 이미 미국·영국은 정년제를 폐지했고, 일본(65세, 2013년 시행)·프랑스(62세, 2018년 예정)는 정년을 연장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삭감하고 소정 기간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 유형은 정년보장형,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재고용형)으로 분류된다. 임금피크제의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주로 정년연장형·고용연장형을 채택했다. 65세 연금수령 나이에 연계해 60세 이후의 고용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년제를 재활용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 주로 고령이지만 숙련인력을 활용해야 하는 제조업에서 정년제를 적극 활용했다. 정년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포스코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소수의 기업만 시행했다. 공공기관의 경우 대개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를 선택했다.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 채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정부의 압박이 주효한 탓이다. 반면 대표적인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경우 선택형 정년연장형을 도입해 종전 사례와 차별화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정년제가 각광받는 것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관련이 있다. 고령의 숙력 인력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필요에서 추진됐다. 그 방식은 노사 모두 득실에서 벗어나 더 오래 일할 수 방안을 찾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량 퇴직이라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업이 선택한 방안이다. 이것이 신규채용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지는 과학적으로 분석되지 않았다. 마치 시소게임처럼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채용이 줄어든다’는 분석은 너무나 단순하다. '산수'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신규채용이 늘어나지 않는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도 있다. 500대 기업이 쌓아 둔 사내유보금만 726조원이다. 이러니 고용과 기술 투자가 늘어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드는 것이다. 인건비 비중이 낮음에도 정년연장을 우려하는 대기업일수록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주술처럼 '채용절벽'을 주장한다. 대기업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은 거론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려면 노동자가 건강하게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퇴직 후를 대비한 사회안전망도 갖춰야 한다. 이를 고려할 때 2016년에 시행되는 60세 정년제는 단기적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 프랑스처럼 법정 정년을 연금수령 나이(65세)와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부가 일률적 잣대를 가지고 특정 유형을 강요해선 안 된다. 신규채용을 고려해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거나 임금피크제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전적으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채용절벽을 부르짖으며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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