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스바겐 카셀 공장 전경. 이주호
▲ 폭스바겐 종업원평의회 사무실 전경. 이주호
▲ 폭스바겐 카셀 공장 앞에서 국제노동대학 동료들과 함께. 이주호
▲ 폭스바겐 공장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 장면. 이주호
▲ 폭스바겐 공장 내부 입구. 이주호

2013년 10월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학업을 마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이주호 단장은 국제노동기구(ILO)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독일노총(DGB)의 후원으로 독일 카셀대학(Kassel)·베를린 경제법학대학(HWR Berlin)에서 '노동정책과 세계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 경제모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의 바이블로 보는 경향도 나타난다. 과연 그럴까. <매일노동뉴스>가 이주호 단장의 독일 유학기를 연재한다. 이 단장은 연재를 관통하는 제목을 '노동존중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라고 썼다. 매주 목요일자에 11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지난해 1월 카셀에 있는 폭스바겐(VW) 공장과 종업원평의회를 방문했다. 한국에서도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자동차 생산공장이었는데 독일에 와서야 그 꿈을 이뤘다. 사전 예약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생산라인에서는 사진촬영을 엄격히 제한했다. 공장은 카셀 시내에서 트램 5번 또는 7번을 타고 5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VW-Werk역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난 공장 입구에서 길게 이어지는 건물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됐다. 사측 관계자에 따르면 폭스바겐 카셀 공장은 총면적 327만4천504제곱미터로 이는 축구장 200개를 합친 크기라고 한다. 폭스바겐은 1938년 볼프스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첫 생산을 시작했다. 일찍부터 세계 공장 건설에 나서 53년 브라질, 56년 남아프리카 공장을 설립했다. 카셀 공장은 이보다 늦은 59년에 생산을 시작했다.

이날 방문 첫 시간에 진행된 공장측 프레젠테이션에 따르면 카셀 공장은 엔진과 기어박스를 생산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유해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친환경 미래형 자동차인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위해 e-drive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만6천명의 노동자(가족 1만8천명)와 1만1천500명의 이 공장 출신 연금생활자(가족 4천800명), 2천700명의 부품 납품업자(가족 3천500명), 5천명의 관련 협력업체(가족 5천500명) 등 총 6만6천여명이 경제적으로 카셀 공장에 의존하고 있다. 북헷센(hesse) 지역 전체 인구의 6%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자세한 통계자료를 통해 폭스바겐 공장의 지역경제 기여도를 강조하려는 듯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사측 관계자가 발표한 자료를 요약해 보면, 폭스바겐에는 전 세계 22개국 105개 생산공장에서 55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대략 하루 평균 4만대, 연간 928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총매출액은 2012년 기준으로 총 1천927억유로이며, 세금 공제 후 219억유로의 이윤을 남겼다. 참고로 폭스바겐은 일본의 도요타와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사측 관계자로부터 개괄적인 공장 소개를 받은 뒤 주요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종업원평의회 사무실에서 국제노동대학 학생들과 종업원평의회 간부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사무실은 구내식당 위 2층에 위치해 있었다. 330제곱미터 가량으로 쾌적하고 무척 넓어 보였다. 종업원평의회 의장은 카스텐 뱃쫄트다.

먼저 종업원평의회와 공동결정제도가 소개됐다. 폭스바겐 종업원평의회 간부는 39명이다. 4년마다 투표로 선출되며 우편투표도 가능하다. 이 중 37명은 독일노총(DGB) 금속노조 소속이고, 2명이 기독교 금속노조(CGM : Die Christliche Gewerkschaft Metall) 소속이다. 곧 선거가 예정돼 있는 듯 ‘같이 생각하고 같이 결정하고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선거 슬로건 아래 82명의 후보자 명단과 투표방법을 안내하고 있었다.

종업원평의회 사무실에 게시된 임금 현황표를 보니 2014년 7월 현재 초임 1호봉은 월 1천916유로(268만원), 시급으로는 13.16유로(1만8천200원)이고, 경력자 20호봉은 6천131유로(858만원), 시급으로는 42.09유로(5만8천800원)이다. 참고로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독일 법정최저임금은 시급 8.5유로(1만1천900원)이다. 반면 한국은 2015년 기준 시급 5천580원에 머물러 있다.

간담회를 마치고 사무실을 둘러봤는데, 금속노조에서 만든 스탠드 홍보게시판과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종업원평의회의 목표’라는 주제하에 실력 있고 경험 있는 종업원평의회는 "폭스바겐의 미래, 임금인상, 고용안정, 퇴직 후 건강한 노후, 환경보호"를 쟁취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환경보호’가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또 다른 스탠드 홍보게시판에는 ‘공동결정제도’를 잘 활용해 노사 간 갈등을 극복하자면서 이를 위한 수단으로 "임금협약, 단체협약, 규정, 입장, 미래를 위한 토론, 소통, 노사 간 역지사지" 등을 꼽았다.

한쪽 벽면에는 대규모 파업사진이 걸려 있었다. 해고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폭스바겐은 폭스바겐에 머물러야 한다"는 구호 아래 2008년 9월 12일 4만명이 참가한 VW-Gesetzes(폭스바겐법)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진이었다. 한국에 이미 알려진 대로 독일 폭스바겐법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중요한 기업에 대해, 해당 기업이 계속 장기적 투자로 국민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자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단일주주가 20%를 초과하는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법이다. 폭스바겐이라는 자동차회사 이름도 한국말로 번역하면 ‘국민차’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종업원평의회 간부들이 개별 공장 종업원평의회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폭스바겐 공장 노조들과 연대해 유럽종업원평의회, 세계종업원평의회 등을 만들어 국제연대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이상호·정원호 박사 등이 소개한 바 있는 폭스바겐 노동자들의 ‘연대적 고용균형 확보전략’ 의 일환이다. 사측의 비용절감을 목표로 한 생산거점 간 경쟁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세계종업원평의회를 만들어 국제기본협약(Global Framework Agreement)을 맺고 노동자 간 경쟁을 지양하면서 노동조건 상향평준화 전략을 택하고 있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기 위해 국제산별연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국제기본협약 체결운동은 1960년 국제산별연맹(GUF)에서 시작됐다. 최근 각 산업을 망라해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100개 가까운 국제협약을 체결했다. 폭스바겐에서는 2002년 6월6일 국제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노동기준을 준수할 것을 확약하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전면 보장하면서 아동노동·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임금과 노동안전·노동시간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임시직 노동자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폭스바겐그룹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과 고용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이 협약이 적용된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7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국내에서 일하고 있고, 세계 5위 자동차회사인 현대차는 물론 전 세계 80여개국에서 37만명을 고용하면서 한국 GDP의 17%, 수출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무노조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노조의 세계화 대응전략과 국제연대에 적극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독일 친구가 "노조 국제사업과 관련해서 통합서비스노조와 금속노조가 각각 10여명씩 인력을 배치하고 있는 데 반해 독일노총은 단 3명만 이를 담당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경우 거의 모든 조직이 국제담당자 1인에게 모든 국제사업을 맡기고 의존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우린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도 금속노조 현대·기아·한국지엠지부 등 글로벌 기업의 경우 세계화 시대에 노조대응전략 차원에서 폭스바겐처럼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공장 사이에 세계종업원평의회 같은 국제 연대 틀을 만들어 국제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폭스바겐법에서도 좋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세계화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국제연대활동에 대해 보다 전략적이고 전향적인 역량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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